‘사이드카’ ‘서킷브레이커’가 무엇이죠

17년 전인 1987년 10월 19일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가 대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전날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무려 22%나 하락했는데 이로 인하여 주식시장은 공황상태로 빠졌고 수많은 투자자가 자살하기도 했다. 뉴욕증시의 하락은 단순히 미국에 머물지 않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어 세계 증시의 동반하락 현상이 초래되었다. 이 날 하락한 주가수준은 1929년 세계에 공황이 닥쳤을 때 하락한 것보다 2배나 크다. 미국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브래디 위원회)를 만들어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향후 대책 마련을 지시하였다. 브래디 위원회는 주가폭락의 원인 중의 하나로 프로그램매매를 지목했고 대책으로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라는 것을 내놓았다. 사이드카라는 것은 주가가 변동할 때 프로그램매매 주문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이고, 서킷브레이커는 아예 시장 전체를 잠시 중단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일어난 10월 19일이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이 날을 블랙 먼데이라고 불렀다.
지난 5월 10일 우리나라의 주가가 한꺼번에 5.7%나 빠지자 상당수의 국내 언론은 이를 한국판 블랙 먼데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외국인의 주식매도와 프로그램매매를 지목하였다. 아시아의 신흥 시장에서 외국인이 투자자금을 회수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외국인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기 전에 풋옵션을 대량으로 매수(주가가 하락하면 이익)하여 이익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이는 한국 증시 전체를 상대로 한 이른바 ‘작전’일 수도 있다 주장했다. 즉,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의 관계를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는 세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외국인의 매도에 따라 추종하는 우리 증권시장의 취약함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5월 10일의 경우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일의 총 거래금액은 약 3조원에 달했는데 외국인의 거래비중은 매도가 23%이고 매수가 23%였다.

반면 개인들의 비중은 매도 57%, 매수가 60%였다. 매도금액에서 매수금액을 뺀 순매도금액은 외국인이 320억원이었지만 개인 투자자는 약 1,000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이날 7천억 원 어치의 주식을 팔았지만 개인 투자자는 1조8천원어치의 주식을 샀다. 이 정도면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훨씬 커야 하지만 실제로 개인투자자들은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개인투자자가 똘똘 뭉쳐서 외국인의 매도 공세를 막았다면 주가 폭락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문제는 기관투자가이다. 그 날 증권, 보험, 투자신탁 등 기관투자자들의 거래 비중은 매도가 18%이고, 매수가 14%였다. 일단 비중만으로도 우리나라의 기관투자가는 증권 시장의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힘겨워 보인다. 기관투자가는 나름대로의 정교한 분석을 통하여 투자하고, 전문가의 입장에서 개인 투자자에 비하여 더 나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주가의 적정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유지하는 안전판으로서의 역할도 기관투자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집력이 없는 개인투자자가 기댈 곳은 자연스럽게 외국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외국인은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가지고 있어서 우리보다 더 우리 기업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실정이다.
최근 경험한 주가 하락 사태는 우리나라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주가지수가 고점을 기록한 후 5월 19일까지 우리나라는 주가가 17% 하락했다. 가장 많이 하락한 나라는 대만으로 23%, 인도와 뉴질랜드는 16%, 태국은 10% 정도 하락했다. 반면 중국은 5%, 호주는 2% 만 하락했다. 브라질은 22%, 러시아는 7% 주가가 하락했다. 신흥 증시 하락의 공통적인 특징은 외국인의 거래에 주가의 상승과 하락이 많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고 자체 안전판 역할을 할 기관투자가가 잘 육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증시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에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이 계속되는 와중에 개인투자자가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증시 발달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시장의 원리’와 같은 고상한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비시장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장의 원리가 공평함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 법학 졸>choica@kse.or.kr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