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者不博 博者不知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어느 토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있었던 일. 내 옆자리에 초로의 아주머니 두 분이 앉으셨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었다.
“등산하고 오시나보죠? 어느 산을 다녀오시죠?” 나이세가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등산이라기보다 그냥 가까운 데 갔다 오는 거죠.”
이렇게 시작된 나와 아주머니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일상생활 이야기로 옮아갔고 우리는 그렇게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맞은편 자리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여러 명이 앉아 이야기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몇 정거장 지났을까.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 네 분이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머니들은 떠들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몰려갔다. 당연히 아이들이 자리를 양보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어머니 나이쯤으로 보였으니 자리양보를 기대할 만도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학생들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이야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네 명의 아주머니들도 똑같이 놀란 것 같았다. 그들은 놀라고 당황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황한 채 그대로 서있었다.
내가 옆자리의 아주머니에게 귀엣말로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저게 무슨 장면인지 아세요?”
“ … ?”
“아이들이 복수하는 겁니다. 어머니들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 … ?”
“저 아이들이 유치원 다녔을 적에 저 아이들 엄마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와서 아이들이 길을 건너지 않으려 하는데도 차가 안 보이면 아이들 머리 쥐어박으면서 끌고 갔던 사람들이에요. 또 어디에서 줄을 설 때에도 남들을 밀치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가르쳤던 사람들. 남의 자리 빼앗아 자기 자식을 앉혔던 사람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면서 자기 아이들만 챙겼던 엄마들입니다.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그대로 지금 당하고 있는 거예요.”
옆자리의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나보다 두 정거장 먼저 내렸다. 내리면서 의미 있는 눈인사를 나에게 보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나 자신 나의 아들과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내가 호되게 가르친 덕에 자리 양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자식들은 제법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아들의 경우 어렸을 적 나의 잘못으로 정신적 집중력이 부족해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나는 늘 갖고 있다. 지금은 결혼하여 자식도 두었으니 스스로 극복해서 많이 나아졌으리라고 생각도 되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늘 마음에 걸렸다. 집중력이 부족해진 이유가 어렸을 적 장난감을 한꺼번에 너무 여러 개를 가지고 놀아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발육이 왕성한 시기에 그것이 아이의 정신발달에 혼란을 야기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이 정신의학적으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서에서 다독보다는 정독을 권장한다. 다독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어떤 책은 반드시 정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필자의 마음과 통할 수 있다. <노자>에 知者不博 博者不知란 말이 있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어에는 “We should know something of everything and everything of something”(모든 것에 대해 얼마간 알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이란 말이 있다.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요지는 같다. 핵심에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학에서 우리가 교양과정을 거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에서든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거기에 접근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표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