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1999년, 2000년 등 최근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우리 나라 학생들의 과학과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의 성 차이는 점점 커져갔고, 급기야는 과학 영역 세계 최고의 성 차이 국가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과학과 국제비교연구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에 가려 그 심각성조차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한 점을 국내 교육계는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과학에서의 성 차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예상되는 번거로움을 염려하는 교육 관계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국가들이 성 차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동안, 우리 나라는 우수한 과학 성취도 결과에 도취되어 과학 교육에서 주변부에 있는(marginalized) 여학생에 대한 배려에 지나치게 인색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몇 남지 않은 성 차이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된 셈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한 인터넷 뉴스에 반가운 기사 화면이 떴다. “남학생보다 똑똑한 여학생”이라는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 아래에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영역의 전국에 걸친 초·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앞섰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흔히 알려진 대로, 언어 능력에서 더 탁월한 여성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국어, 영어, 사회 과목에서 여학생의 선전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국내·외의 많은 연구에서 객관적으로 수없이 입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반면, 과학과 수학에서조차 여학생이 우세한 결과가 나타난 점은 ‘얼핏 보았을 때’ 예상 밖의 결과였다. 이는 우리 나라 여학생들이 불과 이삼년 전에 실시된 과학과 수학 관련 권위 있는 국제 비교 평가에서 세계 최대의 차이를 보이며 남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뒤진 것으로 밝혀진, 그 때 그 결과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였다.

평소에 관심이 많던 주제인지라, 이 기사를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훑어 내려가면서 처음 느꼈던 반가움은 의아함으로, 의아함은 다시 염려스러움으로 점차 변해갔다. 처음 느꼈던 반가움은 ‘국가 경쟁력 신장을 위해 여성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장려해야 한다’, ‘여학생의 과학에서의 자신감 회복은 그들의 잠재적인 과학 능력을 발산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등의 거창한 주장을 근거로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드러나지 않게 무시 받아 온 ‘나와 동일한 성(性)’의 과학 능력이 재평가되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감을 근거로 하는 면이 더 컸다.
반가움이 의아함으로 변한 것은 기사에 실린 내용만을 바탕으로 볼 때, 결코 과학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똑똑하다고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발견하고 나서다. 100점 만점으로 보았을 때 고등 학교 1학년 여학생과 남학생의 과학 점수는 각각 45.67점, 44.64점으로 불과 1.03점의 차이를 보이며, 이는 사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국어와 사회에서 각각 7.09점과 5.44점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낸 결과와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여학생의 우수한 성취도 결과를 다소 과장하여 부각시킨 이 기사를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왜 부정적인 시각에서 파헤치려는 걸까? 이에 대한 답변은 바로 내가 기사를 보고 느낀 마지막 감정인 ‘염려스러움’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확대하고자 하는 학계의 노력이 서서히 발돋움하고 있다. 여성 과학자와 여학생들의 지속적인 만남 주선,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 프로그램 개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 전환 교육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작지만 큰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태동하는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물론 지난 20년간 우리 나라 여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나 과학 성취 수준이 낮게 나타난 연구 결과, 다른 분야에 비해 여전히 희소성을 유지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의 수 등을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인식한 이후에 정부나 학계의 지원에 힘입어 나타난 산물이기도 하다. 이제 막 시작한 과학계와 교육계에서의 여학생에 대한 배려는 적어도 향후 수십 년간 유지되어야만 노력만큼의 결실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말 수는 없다. 고도가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에서 지적한 문제가 국가적인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예를 수없이 많이 경험해 왔다. 연구 결과에 대한 견강부회(牽强附會) 식 해석을 통해 혹시라도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과학에서의 성 평등 연구 지원이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바로 그 점이 염려스럽다.
신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