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윤기(尹 , 1741琪~1826)의 『잡설(雜說)』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윤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다. 영조 49년(177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 년간 학문을 연구하였는데, 『반중잡영(泮中雜詠)』을 지어 당시 성균관의 제도와 풍속을 기록으로 남겼다. 벼슬은 호조참의에까지 이르렀는데, 『정조실록』의 편찬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잡설』은 그의 문집 『무명자집』 권 5에 실려 있는 글이다.

거미가 허공에 줄을 쳐놓고 날것들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모기 파리같이 작은 놈, 매미 제비같이 큰 놈 등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고 잡히는 대로 잡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걸렸는데, 이를 보고 서둘러 칭칭 동여매던 거미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아마도 벌에게 쏘였던 모양이다. 한 아이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벌을 보고서 손으로 풀어주려고 하였는데, 벌이 또 쏘았다. 벌에 쏘인 아이는 화가 나서 발로 밟아 죽여 버렸다.

아아! 거미는 다만 자신이 날것들을 다 그물질할 수 있다는 것만 믿고 벌이 쏠 줄 안다는 것을 몰랐으며, 벌은 한갓 침으로 쏘는 데에만 능했지 자신을 해치려는 자와 자신을 구해주려는 자를 분간하지 못하여 무작정 쏘아대기만 해서 끝내 자신을 구해주려는 자로 하여금 자신을 해치도록 하였다. 또 아이는 단지 거미가 떨어져 죽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줄만 알았지 벌이 악독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으며, 난처한 지경에 빠진 벌을 구해주려고 했을 뿐 벌이 독침으로 쏘아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하였구나. 세상일이 어찌 이것만 그러하겠는가?
거미는 허공에 거미줄을 쳐서 날것들을 잡는 재주를 가지고 있고, 벌은 상대방을 해칠 수 있는 벌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재주만을 믿었을 뿐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거미는 벌이 자신을 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으며, 벌 역시 침에 쏘인 아이가 자신을 밟아 죽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아이 또한 구해주려 했던 벌이 도리어 자신을 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무엇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는 길도 물어 가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널 일이다. 순진한 탓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탓인지, 문제를 단순하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다가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윤기는 세상사란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 같은 현실인식은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세상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의 불행은 그 같은 현실인식이 어느 한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엮은 『설원(說苑)』이라는 책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한다.
수목원의 나무 위에 매미가 있었다. 매미가 높은 곳에서 슬피 울며 이슬을 마시고 있었는데, 뒤에 사마귀가 있는지를 몰랐다. 사마귀는 몸을 둥그렇게 굽혀 매미를 잡으려 했는데, 그는 또 그 옆에 섬 참새가 있는지를 몰랐다. 섬 참새는 목을 늘여 사마귀를 쪼으려고 했는데, 그는 또 그 아래에 탄환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몰랐다. 이 셋은 모두 눈앞의 이익만을 얻고자 힘썼지, 그 뒤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살피지 못한 것이다.
눈앞의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자신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매미와 사마귀, 그리고 섬 참새의 운명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생(生)을 우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대한 안목 없이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말미암아 목전에 있는 이익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담보로 하는 행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이야기이다.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