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측면에서 동성애를 바라본다면 단순히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서 이해되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해라는 단어보다는 취급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을 쓴 채 정확히 알려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으려는 자신을 이 사회의 적절한 표준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표준이고 무엇이 일반적인 것인가를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동성애를 전적으로 다루는 영화이건 아님 단순히 하나의 소재로서 동성애를 다루던 간에 영화 속 동성애자들은 우리가 너무도 잔인스럽게 뱉어내버리는 변태가 아닌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을 직접적이고 때론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동성연애가 우리에게 처음 보여진 것은 자극적인 영상을 요하는 에로 영화의 한 소재일 것이다. 즉,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포르노 성 영화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엠마뉴엘 부인」 시리즈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영화들 속에서 동성애는 소도구 정도로 취급되고, 레즈비언의 이미지도 역시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볼거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영화는 동성애를 단순히 남성들의 성적인 자극을 위한 볼거리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동성애 자체가 문제적 요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동성애의 장면을 연출해 보이는 여성 캐릭터는 남성 혐오자로서의 동성연애자라기보다는 남성을 위한 쇼를 연출하는 일종의 양성연애자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 속에서의 동성애는 그것을 바라보는 남성 혹은 여성에게 아무런 도전도,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관객이 자신을 영화적 현실 속에 개입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 동성연애 자체에 대한 입장표명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에는, 영화 관람을 통해서 남는 것은 이미지일 뿐이지, 실제의 인간관계가 지시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게 된다.
모든 헐리우드 영화에서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희극적인 목적으로 동성애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고 포르노적인 영상을 위해 동성간의 성행위를 표현하거나 도덕적, 사회적 타락의 상징으로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과 「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라는 두 편의 퀴어무비를 감명 깊게 본 나에게는 왠지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는 아시아권 영화가 좀더 진지하고 감독과 배우들의 동성애와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패왕별희」를 단순히 퀴어무비라고 말하기엔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크지만 이 영화 속 도즈와 시토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이성간에서 존재하는 감정이 동성간에서도 그냥 하나의 감정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과 질투 그리움과 증오,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 감정의 유형들이 두 생물학적 남자사이에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에서 어찌 반영되고 상처받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홍콩의 지구 반대편 끝에 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정신적 유랑을 겪는 두 남자는 이야기를 다룬 「해피투게더」는 어두운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그 들의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본능 속에서의 갈등을 나에게 완전한 이해는 아니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서의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1991년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어설프지만 동성애를 다룬 영화가 등장했다. 윤상욱 씨가 자신의 시나리오로 만든 「이태원에는 미국 달이 뜨는 가」 라는 작품이 첫 시도였을 것이다. 감독은 근심 어린 시선으로 이태원의 젊은이들을 훑고 가는데 게이바에서 여장 남자 접대원이었던 주인공이 반성하고 자연스런 성, 남자로 돌아오는 결말을 내고 있는 그런 왠지 동성애자 탈출기 같은 그런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 전의 우리 영화 속 동성애의 모습은 이 글에서 다룰 만큼의 주제의식이나 진지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후에 「내일로 흐르는 강」이라는 독립영화에서는 조금이나마 동성애자들의 삶을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또한 동성애 영화에 대한 담론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최근 「로드무비」라는 영화에서 과감하게 동성간의 사랑에 대해 접근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 역시 아직까지는 그들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기엔 힘겨워한다는 것을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들을 완전히 이해한다거나 그들의 삶 전체를 포용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아직도 버리지 못한 편견들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그들의 사랑을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하느냐 아니면 정신적인 사랑의 교감을 인정하느냐가 그들을 바라보는데 있어 또 다른 시선을 우리에게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리고 충실한 인간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어떠할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막연하게 뿌연 시선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많은 영화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이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