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
우리는 얼마 전 김선일 씨가 테러집단에 납치되어 죽음을 명전에 두고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생명이 중요한 것 같이 내 생명도 중요합니다.”고 울부짖는 장면을 TV 화면을 통해서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나의 뇌리에 울리고 있다. 그에게 그렇게 소중했던 생명을 테러집단은 다른 목적을 얻는 수단으로 무참히 빼앗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 직후, 나는 월드비전의 국제구호 사업회의 참석차 캄보디아의 프놈펜을 방문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인종말살 박물관과 ‘킬링필드’를 돌아보던 중,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진과 높게 쌓여있는 해골들을 보았다. 그 순간 내 귀에는 김선일 씨의 살려달라는 울부짖음과 함께 수천, 수만 명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폴포트 정부의 크메르루즈군의 잔혹한 총칼 앞에서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의 가난한 지역을 방문할 때,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저는 굶주림으로 죽고 싶지 않아요. 저의 생명을 살려주세요.”라고 힘없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문명사회를 이뤘다는 20세기의 기술문명시대에 인간이 일으킨 전쟁은 2천만 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21세기에 들어 선 현재에도 매년 천만 명의 어린이가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1억 5천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부족으로 죽어가며, 비타민 A의 부족으로 매년 50만 명의 어린이가 실명한다.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내 생명을 구해 달라.”고 울부짖는 지구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게 되었다.

70년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면서 전쟁, 가난, 질병, 재난 속에서 나도 “죽고 싶지 않아요. 내 생명을 살려주십시오.”라고 여러 번 울부짖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생명은 유지되고 풍요로운 삶까지 누리게 되면서 “내 생명을 살려 달라.”는 처절한 절규를 듣고, 그들의 생명을 사랑으로 섬겨야만 한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가치관과 이념들을 접하게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이것이다, 아니 저것이다 라는 강요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 북한 공산주의, 한국전쟁, 군사독재, 부정 부패로 얼룩진 남한 자유민주주의, 과학주의, 종교근본주의 등 다양한 가치관의 갈림길에서 나는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결단을 해야만 했다. 한국동란 때 홀홀 단신 남한으로 피난을 온 십대의 소년에게 삶의 기본가치나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정신의 힘을 키워줄 가족, 지역사회, 고향을 통째로 잃고 뿌리내릴 수 없는 방랑자의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이런 고통스런 실존의 삶 속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내 생명이 사람의 사랑을 안타깝게 갈구하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내 외로운 생명을 사랑으로 먹여주기를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필요로 했던 사랑으로 내 생명을 섬긴 사람들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꺼져가는 내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주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따뜻한 미소와 격려의 손길, 굶주린 내 생명의 창자를 채워준 라면 한 그릇, 방학 때 오갈 데 없는 나를 자기 시골집으로 데려가 준 그 아름다운 마음씨……. 이 모든 생명의 자원들이 나에게 다가와 큰 삶의 교훈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며, 그 생명은 사랑을 필요로 하고, 생명을 사랑으로 먹여주기 위해서 누군가의 섬김의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신념이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명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려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했고, 장신대와 프린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회사업(사회복지) 석 ·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15년의 긴 학문의 연마와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치과의사, 목사,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사람의 생명을 사랑으로 섬길 준비를 하게 되었다. 생명존중의 가치관 확립, 사랑 실천의 능력배양,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의 확장에 대한 일관된 나의 신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과 나의 생명을 사랑으로 섬겨 나를 키워준 여러 생명들께 감사한다. 권력, 재력, 지식, 명예, 지위를 얻기 위해 증오, 갈등, 권모, 술수 등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세속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생명을 사랑으로 섬기는 참 삶을 선택하여 한 평생을 풍요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큰 축복의 삶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생명, 사랑, 섬김’은 21세기에 우리가 살아갈 삶의 가치이며, 정신적 힘이라고 본다. 생명을 사랑으로 섬기는 나의 인생항로를 자신 있게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박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