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임강현의 사냥꾼이 고라니 새끼 한 마리를 잡아서는 기르려고 가지고 왔다. 문에 들어서니 뭇 개들이 침을 흘리고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사냥꾼이 노하여 개를 쫓아버렸다. 이로부터 날마다 고라니를 안고 개 있는 곳으로 와서 늘 보게 하니, 개들로 하여금 고라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또 고라니로 하여금 조금씩 개와 놀게 하고자 해서였다. 그렇게 하기를 꽤 오래 하니, 개들이 모두 주인의 마음을 알아 그와 같이 행동하였다. 고라니도 점점 커감에 따라, 자기가 고라니임을 잊고 개들이 자기의 진정한 친구인 줄 알아 온종일 서로 뒤섞여 장난하며 지내니, 날이 갈수록 더욱 가까워졌다.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여 고라니와 잘 놀았으나, 때때로 입맛을 다시곤 하였다. 3년 후 고라니가 문을 나왔다가 길에 들개가 많은 것을 보고, 달려가 그들과 놀고자 하였다. 그러나 들개들은 고라니를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여 함께 그를 잡아먹으니 길가가 낭자하였다. 고라니는 죽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였다.
②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강아지를 얻어 기르는데, 강아지가 작고 처음 왔기 때문에 자주 먹이를 주고 매번 안쓰럽게 여기면서 쓰다듬어 주었다. 그 집에 있던 늙은 개는 이에 속으로 한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였다. 주인이 보기만 하면 강아지를 핥아주고 안아주는가 하면, 강아지 몸에 붙어 있는 이를 깨물어주기도 하고 파리를 쫓아주기도 하였다. 이에 주인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며칠 후 마침내 개는 밤에 주인이 깊이 잠든 틈을 타 이빨을 세워 강아지의 목을 물어 죽이고는 문 밖에 물어다 내놓았다. 날이 밝아 주인이 일어나자, 늙은 개는 주인의 옷을 끌어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슬피 울며 강아지의 시신을 가리켜 보였다. 모름지기 속으로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서 겉으로 애련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 주인으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게 하였고, 또한 그 악독한 짓을 이미 행하고서도 강아지가 죽은 것이 자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하였으니, 교활하도다. 개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서술 시각이 피해자와 가해자 가운데 어디에 맞추어져 있느냐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인 몰래 주인의 사랑을 받는 동물을 기존에 사랑받던 동물이 시기하고 질투하던 끝에 물어 죽인다는 두 편의 비슷한 이야기이다. ①은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삼계(三戒)> 가운데 [임강현(臨江縣)의 고라니]이고, ②는 윤기(尹 , 1741∼1826)의 <잡설(雜說)> 중 세 번째 이야기이다.
[임강현의 고라니]는 자신이 고라니임을 잊고 개들을 진정한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며 가깝게 지내고자 하다가 결국 개들에게 잡혀 먹히는 고라니, 그의 어리석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인 반면, <잡설>은 겉으로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강아지를 질투하여 마침내 주인 몰래 물어 죽이는 악독한 짓을 하고서도 태연히 모르는 척 하는 늙은 개의 교활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 년의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잡설>이 [임강현의 고라니]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은 아니다. [임강현의 고라니]의 경우, 그 대립과 갈등은 ‘고라니’와 ‘개’라는 이류(異類) 사이의 것이며, 고라니를 잡아먹는 것이 고라니와 함께 생활했던 ‘사냥꾼의 개들’이 아니라 고라니를 처음 본 ‘들개’들인 반면, <잡설>에서는 ‘강아지’와 ‘늙은 개’라는 신구(新舊)간의 대립을 전제로 한 동류(同類) 사이의 갈등이며, 이들은 모두 주인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존재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점은 유종원의 [임강현의 고라니]를 새롭게 재창조한 윤기의 <잡설>이 지니는 독자적 세계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잡설>의 창조적 형상은 작품 내의 갈등과 대립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함으로써 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데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위의 두 글을 읽으며 가슴 속에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홀로서기’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들개가 되었건 늙은 개가 되었건 두려울 것이 없지 않겠는가? 윤승준<교양·강의전담>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