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

23. 무능한 고양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집에서 고양이 두세 마리를 길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낮에는 항상 잠을 자다가 밤만 되면 문득 사방을 돌아다니며 쥐를 잡았다. 그러나 주인은 이것을 보지 못하고 무능하다고 여겼다. 다른 한 마리는 밤이면 주인 옆에서 잠을 자다가 낮에 혹 쥐를 잡게 되면 반드시 주인 앞에 물어다 놓고는 그 쥐를 가지고 희롱하며 구경거리로 만드니 주인이 기특하게 여겼다. 그래서 비록 음식을 훔쳐 먹거나 닭을 잡아먹는 고약한 버릇이 있어도 벌하지 않았다. 쥐들은 밤마다 자신들을 잡으러 다니는 고양이 때문에 죽지 않은 놈들은 모두 멀리 달아나 근심을 피하였으니, 마침내 그 사람의 집에는 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이 다른 고양이의 공인 줄 알고 마침내 밤새 쥐를 잡으러 다니던 고양이를 때려서 내쫓았다. 마침내 쥐들이 서로 불러서 돌아오게 되자 다시는 이들을 근절시킬 수 없게 되었다.
지각이 있는 이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면, 그는 과연 이 가운데 어느 고양이를 기르겠는가?

윤기( , 1741~1826)의 ‘잡설(雜說)’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길지 않은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은 그리 개운치 않다. 왜 그럴까? 심하게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고양이는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대견하다. 그가 있기에 쥐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모르게 자신의 책무에 충실한 고양이를 주인은 알아보지 못한다. 쥐는 알아보는데 주인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독자는 무언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주인이 보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책무를 저버린 채 한껏 게으름을 피우던 고양이가 어쩌다 쥐 한 마리를 잡아서는 마치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주인 앞에 나아가 호들갑을 떤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거늘, 그것도 어쩌다 한 번 그렇게 해놓고서는 이처럼 야단스럽게 구는 꼴이라니. 결코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작태이다. 그러나 주인은 그런 고양이를 떠받들며 집안에 쥐가 들끓지 않는 것은 바로 이 고양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고양이는 더욱 방자하게 군다. 제 분수를 모르고 음식을 훔쳐 먹고 닭을 잡아먹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고양이를 벌하지 않는다. 독자들의 의혹은 그래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점점 커져가던 독자들의 의혹은 성실한 고양이가 쫓겨나는 데 이르러 마침내 절정에 이른다. 무엇이 옭고 그른 것인지, 시비가 전도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옳고 그름이 뒤바뀐 세상, 질서가 무너져 내린 현실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자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쥐들이 다시 돌아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야 싹튼다. 그러나 작가는 그같은 상황을 초래한 주인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다시는 쥐들을 근절시킬 수 없었다는 결말이 작가의 그같은 태도를 보여준다. 오히려 “지각이 있는 이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면, 그는 과연 이 가운데 어느 고양이를 기르겠는가?”라고 냉랭하게 말할 뿐이다.
독자들이 느끼는 개운치 않은 마음이 글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남아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야기 속의 문제가 단순히 이야기 속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언은 그 점에서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작자는 그 점을 의식하면서 우언을 짓고 소통시킨다. 우리의 현실 속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말 하늘은 무심하기만 한 걸까? 그래도 바르게 살라고 하고, 선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는가? 이 글을 쓴 윤기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빗대어 썼겠지만,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과 중첩시켜 또다른 해석을 낳는다. 지난날의 우언을 오늘 다시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