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어서 다 가지고 있는… 상상태풍
상상태풍… 이름도 들어 본적 없으며, 일본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이 팀의 공연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원고를 넘겨 줘야 할 그 시간 나는 일본에 있었다. 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일본 여행 이틀째 난 나고야 블루노트에서 상상태풍의 공연을 보게 됐다. 이 팀을 소개해준 친구의 도움으로 리허설부터 저녁공연과 늦은 밤 공연까지 모두 볼 수 있었는데 난 공연을 보며 딱 이 공연을 글로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없이 지랄 맞고 정신없는 이 엽기적인 팀의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엔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말이다.

드럼의 만또, 보컬의 애미, 세컨드보컬인 사또꼬, 베이스 미시무라, 샤미센 그리고 기타 코류, 키보드 요코 이렇게 6명의 멤버로 그 구성으로 보면 그냥 흔한 밴드쯤으로 생각이 든다.
팀의 리더인 코류는 샤미센을 전기 기타처럼 계량하여 연주하고, 세컨드보컬 사또꼬는 한국, 일본, 중국의 거의 모든 타악기를 연주한다. 장구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 그를 보고 한국사람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이 40대인 이들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나이 많은 아저씨 아줌마에 불과했다. 어딜봐도 친구의 표현 같은 엽기란 찾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한국에서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 단어의 의미가 그렇게 와 닿지 않았던 건 내 눈으론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많은 것들이 엽기란 단어만으로 사용된다는 거였다. 이런 나에게 상상을 초월한다, 엽기다라고 친구가 표현한 ‘상상태풍’의 의미는 긍정적일 수 는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대체 어떤 밴드길래 상상을 초월한다는 건지 하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드럼의 리듬이 시작되고, 천천히 곡이 시작된다. 올드팝 정도의 느낌인 이 곡은 보컬의 시작으로 전혀 다른 곡으로 변화한다.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소리가 깊은 리드보컬은 낮고 무겁게 노래를 시작하고, 후창으로 따라오는 너무나도 얇고 높은 세컨드 보컬의 목소리는 정신이 번쩍 나는 정도다. 베이스며, 키보드, 드럼은 분명히 펑키한 서양스타일의 곡인데 보컬들의 노래 소리와 리더인 코류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샤미센은 한없이 일본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 간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리듬감은 중간 간주를 기점으로 점점 더 빨라지며, 듣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로 정신없는 연주가 된다. 드럼은 너무나도 큰소리로 리드해 나가고 리드보컬 세컨드 보컬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화음이 없는 듯한 보컬들의 높은 목소리들. 다른 악기 소리가 묻혀버린 듯한 연주에 갑자가 꽹과리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산만하던 모든 소리를 뚫고 가장 위에서 연주된다. 하지만 그들이 엽기적이란 소릴 듣는 건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와 무대매너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인트로 부분에서 낮은 목소리로 옛 영화 해설자 같은 연사 흉내를 내며 곡을 소개하고, 이정현의 ‘바꿔’의 소품 같은 부채를 들고 영혼의 탈출을 외치며 관객의 머리를 때리고, 마치 약장사 같이 앨범을 소개한다든지 하는 그들의 무대 매너는 너무 쇼킹 그 자체였다. 또 ‘내 맘은 목욕탕’이란 제목의 노래 같은 생각지 못한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가사를 가진 그들이지만 욕할 수 없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고 재미있으며 훌륭한 노래실력과 연주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그들의 연주 이야기를 하는 건 상상태풍의 연주력을 자랑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하루 동안 상상태풍의 연주를 들은 나는 팝도 재즈나 평키도 아닌 그렇다고 너무도 일본적인 민속음악도 아닌 모든 장르를 지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장르의 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렇게 섞여진 음악은 듣는이로 하여금 얼마나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를 말하고 싶었다. 한국도 국악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융합에 있어서 필요한 포기가 없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상태풍의 노래를 들으면 어디서 한번 들어봄 직한 음악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듣다보면 그건 분명 처음 듣는 곡이다. 의상 또한 그렇다 분명 일본의 전통의상도 아니고 중국의상도 아닌 어디서 본듯 하지만 처음 보는 의상들 모두를 수용하기란 모두를 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융합할 장르를 잘 알고 있어야 그 융합이 가능하단 소리다. 또 그 융합을 이뤄내기 위한 편곡실력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탈장르는 장르를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장르의 창조라고 일본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상태풍의 음악은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과 민속음악을 버리지 않고 음악 속에 묻으려고 하는 그들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상상태풍이 아무리 정신없고 지랄 맞은 일본음악을 한다 해도 말이다.

김명범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 5>


‘대중문화 바로보기’의 필자가 이번호부터 이상지 원우에서 김명범 원우로 바뀝니다.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