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도 공정한 경쟁의 필요조건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은 자유로운 경쟁시장을 통하여 재화(상품과 서비스)가 교환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시장경제의 장점이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할 수 있다.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국가가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재화를 공평하게 배분하면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국가가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수 많은 사람의 자질·욕망에 대한 평가와 그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공정하게 부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이었지는 거의 한 세기를 거친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든 사람이 고상하고, 능력있고, 공평한 심성을 지닐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는 우월한 것이 열등한 것을 지배하고, 계속되는 경쟁을 통해서 보다 더 우월한 것이 나타나는데, 만일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되어 그것이 속한 세계를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면 이 과정을 발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속성은 자본주의의 장자인 시장경제에 가장 적절하게 녹아있다.
시장경제는 재화의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제시스템이다. 가격이 높으면 수요가 줄어드는 반면 공급은 늘어난다. 반대로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나지만 공급은 줄어든다. 만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되고, 어느 누가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가격은 가장 적정한 가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과거와 현재의 정보뿐 아니라 미래의 정보도 포함된다. 잘 작동하는 시장경제를 통하여 재화가 사람들에게 배분되는 경우 가장 이상적인 배분이 이루어진다. 가장 이상적인 배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배분의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불평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높은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에게 많은 물량을 배정하고 낮은 가격에 팔겠다는 사람의 것을 많이 사주었기 때문이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라면 이러한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시장에는 훼방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훼방꾼은 자신의 우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적정한 것 이상의 배분과 이익을 추구한다. 어떤 경우는 시장 자체의 미성숙과 결함으로 자연스럽게 훼방꾼이 탄생한다. 시장참여자의 일부가 시장을 지배하게되고 독과점이 횡행하게되면 시장경제의 순기능은 사라진다. 겉으로는 시장경제이지만 사실은 특정 집단이 사익을 추구하도록 보장하는 악랄한 시스템이 되기도 한다. 시장에 규제가 필요한 것은 훼방꾼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하고, 적정한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시장경제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장경제는 적정하고 이상적인 배분을 보장하지만 이것이 공평하거나 인간적이라는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다. 시장경제에서는 가장 우월한 자가 가장 많은 몫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경제가 만병통치약으로 치부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경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시장경제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한 경우 결국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경험도 시장경제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말이다.
그럼 시장경제에 필요한 규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은 수요와 공급을 특정 집단이 통제할 수 없을 때에만 형성된다. 만일 제대로 된 시장경제라면 누구라도 수요와 공급을 통제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후적으로 조작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규제가 경쟁을 촉진하지 않고 오히려 제한하는 경우도 시장경제 발전의 장애요소이다. 규제완화의 대상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이다. 그러나 건전성에 대한 규제는 규제완화의 대상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망치는 불건전 요소를 억제하고 제재하는 건전성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이다. 다만 건전성 규제도 그 집행을 게을리 하면 무용지물이다. 시장의 가격 결정구조는 그 자체로 건전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가 없다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은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조건을 부여할 때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동일한 조건을 부여하는 것 외에도 수 많은 요소가 공정성 여부를 좌우한다. 시장을 설계할 때 상대적인 약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하는 것은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법학·졸> choica@kse.or.kr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