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선

지금은 사회주의 계열의 서적이나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7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사회주의 계열의 서적이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체제 비판적인 책이나 작품도 읽을 수 없었다. 이러한 책이나 작품은 이념 서적, 불온 서적, 체제 비판적인 작품으로 낙인 찍혀 출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설령 몰래 출판하여 유통되었다고 하더라도 읽다가 적발되면 경찰서나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독서 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읽고 싶은 책이나 작품을 마음대로 읽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었다. 더구나 필자처럼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었던 학생들은 월북 작가의 작품이나 김지하의 시 <오적> 등을 읽고 싶었지만, 공개적으로 읽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읽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거의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도 <오적>을 몰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가슴 저미는 아픔과 부끄러움, 그리고 암담한 현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불행하게도 이같은 치졸한 금서(禁書) 조치는 유신시대 뿐 아니라, 이후 군사정권 때에도 극성을 부렸다. 그런데 선조(宣祖) 때에도 당시 금서로 여겼던 <육신전>을 선조가 읽고 불태우겠다고 법석을 떤 적이 있었다. ‘미암일기’에 그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주상 전하께서 경연관(經筵官)의 계(啓)한 바에 따라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六臣傳)>을 들여다 보시고서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나는 경박한 자들의 말을 잘못 듣고서 이 글을 보게 되었다. 성삼문(成三問)은 노산군(魯山君. 端宗)이 선위(禪位)하던 날에 죽지 아니하고 이미 신(臣)을 칭한 뒤에 거사를 하였으니, 이는 저 예양(豫讓)도 부끄럽게 여겨 하지 않았을 것이며, 남효온의 찬술(撰述)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간에 소장된 이런 책들을 수집하여 불에 태워버리고, 또 마주 앉아서 이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금하고 싶은데 어떠하냐? 삼공(三公)에게 수의하라’ 하시므로, 삼공은 의(議)하기를 ‘오래된 일을 가지고 다시 민간을 소요스럽게 하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하니, 주상 전하께서 그대로 따랐다. 비망기(備忘記)로 삼공에게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지금 이른바 <육신전>이라는 것을 보니 극히 해괴하다. 나는 당초에 이렇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아니하고 아랫사람에게 잘못 듣고 그 글을 목도하고서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렸었다. 옛날 우리 광묘(光廟. 世祖)께서 천명을 받아 중흥하시니 하늘이 베풀어주시고 백성이 귀의하였다. 자고로 천명을 받은 임금은 일이 이미 먼저 정해져서 결코 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저 남효온이란 자는 어떤 사람인데 감히 스스로 문묵(文墨)을 빌어 요망한 말을 늘어놓아 나라 일을 폭로하겠는가. 그 패악부도(悖惡不道)함을 쓰자면 종이가 모자랄 지경으로 이는 바로 우리 조정의 죄인이다. …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저 육신(六臣)이란 자들을 충신이라 할 것이냐 아니라고 할 것이냐다. 그들을 충신이라 한다면 어찌 수선(受禪)하던 날에 쾌히 죽어서 그 신하 된 절개를 다하지 아니하였으며, 만일 그것을 할 수 없었다면 어찌 신발을 들메고 도망하여 서산(西山)의 고사리를 캐지 않았느냐? … 사람마다 각기 자기 임금을 위하는 법인데, 이 무리들은 우리 조정과 더불어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이니, 이 글은 오늘날 신하된 자로는 차마 보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그 글을 다 가져다 불태우고자 하는 것이며, 만일 마주 앉아 이 일을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엄중히 다스릴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삼공이 회계(回啓)하기를 ‘이 글이 와전되고 오기(誤記)된 것은 진실로 성상(聖上)의 유시와 같사오나, 시골구석에는 이 책이 흔히 있는 것도 아니오며 해가 묵어서 벌써 묻혀져 버린 일이온데, 만약 수색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큰 소요를 일으킬 것이오니, 마침내는 이익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니 주상 전하께서 이에 따랐다.”
일부 신하들이 사육신을 복권시키려는 의도로 선조에게 <육신전>을 읽도록 권유했던 것 같다. 헌데 <육신전>을 읽은 선조는 노발대발하였다.

그래서 그는 <육신전>을 불태우고, 사육신에 대해 언급하는 자들을 엄히 다스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신들이 완곡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육신전>은 불태워짐을 모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 종류의 책이나 다 읽을 수 있다. 70년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졌다는 얘기이다. 독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아무 책이나 읽지 말고, 우리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서를 읽자.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의 교육만 받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라 양서 특히 그 가운데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픈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책부터 순차적으로 읽기를 바란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서해서 남 주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