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 25- 어리석은 벼룩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1813)은 1792년 정조(正祖)에게 올린 응제문(應製文)이 문제가 되어 문체반정(文體反正)의 파동에 휩쓸렸던 인물이다. 그는 이후 수차례의 견책과 두 번의 충군(充軍) 등 각종 제재를 받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관되게 지켜나갔다. 이옥은 그가 살던 시대의 정(情)과 실(實)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벼룩[蚤]>이라는 글이다.
경금자(絅錦子)는 해가 넘어가면 일을 쉬어 어두워지면 편히 지낸다. 종이창에 달이 밝고 베 이불에 바람이 솔솔 불며, 파리의 앵앵거림은 없고 나비만 너울너울 자득한 듯 나는데, 정신과 몸을 편하게 펼치면 화서(華胥)를 오간다.
돌연 어떤 놈이 부들방석 틈에서 나와 대자리와 홑이불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마치 기장이 어지러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모발 끝을 타고 올라 지체(肢體) 사이에서 용맹을 떨치려다가, 왼쪽 어깨에 멈추어선 웅크리고 앉는다. 솔기가 터진 곳이 있으면 선뜻 살갗으로 들어가, 장미꽃을 잘못 건드려 붉은 가시에 찔린 듯 혈(血)이 놀라고 기(氣)가 자지러지게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버틸 수 없게 한다. 이에 손을 쳐들어 내리치고 문지르는데, 겨드랑이에 이르러선 비벼대고 긁다가, 마침내 엄지손가락으로 붙잡았다. 놈은 손톱 밑에서 꿈틀거리니, 살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놈은 이익을 쫓느라 화가 닥치는 것을 몰랐으니, 나는 이를 불쌍히 여겨 등을 두드리며 꾸짖었다.
“너는 미물로서 사람이 거처하는 침상과 자리를 네 소굴로 알았다. 마침 내 천성이 게을러서 석 달 동안 쓸고 닦지 않았으니, 목마르면 땀을 들이키고 굶주리면 때를 핥아먹을 수도 있었겠다. 내 너에게 후덕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거늘, 너는 어찌하여 질릴 줄도 모르고 감히 나를 침범하였느냐? 내 피는 술이 아니니 어찌 너의 잔질을 용납하겠으며, 내 살결은 병들지 않았으니 어찌 너의 침을 맞겠는가? 알 수 없도다. 그게 또한 너의 심보이더냐.
네 생각에 사람의 피는 빨 수 있고 사람의 혈(穴)은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겨, 티끌 속에 깃들이고 빈틈에 묻혔다가 밤이면 으스대고 낮에는 숨었구나. 형세를 타서 나아감은 굶주린 쥐가 기심(機心)이 많은 것 같고, 이익을 쫓아 달려감은 가을 모기의 지혜와 같구나. 봉합선의 틈 하나라도 얻으면 거기를 근거로 삼고 바늘땀 하나라도 틈이 있으면 이를 알아차려서는 주둥이를 쓸 때에 반드시 그 틈새를 이용한다.

옛날 편작(扁鵲)과 유부(兪 ) 같은 명의가 침을 잡더라도 이렇게 능숙하고도 신중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사람에게 피와 고기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사람의 손가락과 손톱을 두려워할 줄은 몰랐구나. 개미가 진을 치고 등에가 모이듯, 벌이 침을 쏘고 개구리가 들끓듯, 사람의 고혈을 빼앗아 제 위장을 채우려 하였으니, 배불리 먹은 놈은 쓰러지고 급히 가려는 놈은 자빠졌다. 사람의 살에 피를 내면, 사람 또한 그 뼈에 피를 내는 법이니, 네가 입과 배를 채우려는 것은 곧 네 몸을 해치는 짓이다.
아아, 앞의 일을 두고 본다면 너는 어찌 그리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마는, 뒤의 일을 두고 논한다면 너는 어찌 그리도 멍청하단 말이냐? 너는 네 입만을 사랑하고 네 몸뚱이는 사랑하지 않아서 요란하게 말리(末利)를 쫓다가 그 본진(本眞)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겠는가? 아니면 지혜가 밝지 못하여서 물욕(物慾)에 덮여 눈앞이 어두운 자가 아니겠는가? 나는 네 배를 갈라 너의 실상을 따져 보아야 하겠다.”
하고는 손톱으로 짓누르자, 펄쩍 뛰는 소리가 났다. 동자를 재촉하여 불을 켜고 살펴보니, 창자는 볼 수가 없고 다만 복사꽃 한 송이 붉은 피만 보였다.
요즘이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한때 벼룩이나 이같은 물건들은 사람의 옷과 이부자리, 몸에 붙어 살면서 우리를 괴롭혀 왔다. 이옥은 그런 물것 가운데 벼룩을 소재로 하여 이 글을 썼다. 벼룩을 두고 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벼룩에게 한 말로 들리지 않는 데 이 글의 묘미가 있고, 그로 말미암아 이 글은 우언으로 소통된다.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하여 그와 함께 다가오는 재앙에는 눈감음으로써 끝내 화를 당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윤승준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