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26- 영감! 여자를 멀리하고 홀로 지냈다고 자랑마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겨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기러기 아빠란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보내고 자신은 국내에 남아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 보내고 자신은 한국에 홀로 남아 있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필자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기러기 아빠들이 몇 명 있어 그 외로운 심정을 어느 정도 안다. 귀여운 자식들은 외국에 조기 유학 보내고, 또 사랑하는 마누라는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다고 따라갔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자식이 유능하다면 조기 유학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능력도 없는데, 남도 보내니까 나도 보내겠다는 식의 무분별한 조기 유학은 찬성할 수 없다. 하기야 내가 돈이 있어 자식을 조기 유학 보내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게다가 우리의 교육현실까지 들먹거리면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교육정책과 제도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이상전선(?)이 생겨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이다. 이억만리 낯선 타국에 있다 보니 그 외로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젊은 유학생이나 현지 동포들과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디 아내 뿐 이겠는가? 남편들도 국내에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어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결국 이 일로 인해 가정파탄이 일어나 부부가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부도 많지만, 이러한 이혼 사례 또한 적지 않으니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부부란 떨어져 있는 것 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을 같이 있는 것이 좋다. 『예기』에 보면 ‘예는 부부사이에 삼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부부간에는 언제나 조심하여 삼가는 데서부터 예가 시작된다. 부부간이란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예를 지키지 못하면 크게 파탄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향처경첩(鄕妻京妾)’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 때는 사대부치고 첩을 두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특히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하는 경우, 대부분 본처는 고향에서 부모님을 봉양하고, 첩은 한양으로 따라와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런데 이 때에도 이유야 어찌 되었던 한동안 첩 없이 아들 내외나 딸 내외와 함께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한 사람도 있었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엎드려 편지를 보니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알라고 자랑하셨는데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 3~4개월 독숙(獨宿)한 것을 가지고 고결하신 체하여 은혜를 베푼 기색이 있다면 결코 담담하거나 무심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안정하고 결백하여 밖으로 화채(華采)를 끊어버리고 안으로 사념(私念)이 없다면 어찌 꼭 편지를 보내 공(功)을 자랑해야만 알 일이겠습니까? 곁에 나를 아는 벗이 있고 아래로 권속과 노비들이 있어 십목(十目)이 보는 바이니, 공론(公論)이 자연히 퍼질 것이거늘 애써 편지를 보낼 것까지 있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당신은 아마도 겉으로 인의(仁 )를 베푸는 척하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는 듯 합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니 의심스러움이 한량이 없습니다. 저 또한 당신에게 잊지 못할 공이 있습니다.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수개월 동안 독숙을 하고서 매양 붓끝의 글자마다 그 공을 자랑했지만, 60이 가까운 몸이 그렇게 독숙을 하는 것이 당신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크게 이로운 것이지, 결코 저에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 저는 옛날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방에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고, 당신은 만리 밖에 있어서 그저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통곡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예를 갖추어 성의껏 장례를 치르며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묘를 쓰고 제사를 지냄이 비록 친자식일지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3년 상을 마치고 또 만 리 길을 나서서 멀리 험난한 곳에 있는 당신한테 찾아갔는데 이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 당신이 수개월 독숙한 공을 제가 한 몇 가지 일과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가볍고 어느 것이 무겁겠습니까? 원컨대 영감께서는 영원히 잡념을 끊고 건강을 보전하여 수명을 늘리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제가 밤낮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제 뜻을 이해하고 깊이 살펴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유희춘은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자, 한양으로 올라와 수개월동안 여색을 삼가며 홀로 관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 송덕봉에게 은혜를 입은 줄 알라고 자랑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송덕봉은 남편 유희춘에게 힐난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아 본 유희춘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였다. 부부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살다 보면 이런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같은 실수는 서로 안하는 것이 좋다. 부부사이라도 책(責) 잡혀서 좋을 것은 없다. ‘열 효자 보다 악처가 더 낫다’는 말도 있지만,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게 좋은 것 아닌가
송재용<동양학연구소·연구교수>


지난호(1125호) 본란의 제목을 ‘육신전을 불태우지 마소서’로 바로잡습니다.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