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
32.서울보기와 서울읽기 서정인의 <나주댁>과 이호철의 <적막강산> 읽기


시골사람들의 콤플렉스 서울사람의 소외감
서울과 시골의 차별적 이분법, 공허함은 같은 무게였다


전통이라든지 인간적인 정이 사라진,
잇속이나 돈 독으로 뭉쳐진 서울에서의
상징성은 무가치한 것이 되어 버리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고 망아지는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민들에게 서울은 언제나 중심이었다. 이러한 서울의식은 60년대 들어오면서 더욱 심화된다. 강만길은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적 근대화 정책은 한국 공업의 지역적 편중성과 수출 공업과 내수공업 사이의 이중성을 점점 심화시켰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편중성은 부가가치 기준으로 하여 30.1퍼센트가 서울, 15.2퍼센트가 경기도 지역, 14.4퍼센트가 부산, 13.5퍼센트가 경남지방에 치중되었고 농업 중심 지역은 경제적 근대화로부터 점점 소외되기 시작했다.(<한국 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1984: p.250) 이렇듯 이 시기부터 서울과 시골이라는 이분법적인 차별의식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서정인의 단편소설 <나주댁>(<창작과 비평> 1968.가을)을 보면 이러한 서울에 대한 지방민들의 콤플렉스가 잘 나타나 있다.
애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서울에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벼랑에 핀 꽃처럼 대단한 벽지에서도 산견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그 희소가치로 인해서 더욱 빛이 찬연하고 기세가 대단하다. 아무도 그들의 우국충정을 폄하할 수 없다.……<중략>……생각해 보시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랄 수가 없소. 읍사무소의 사환아이까지 동원되어 나무를 심고 있는데 바로 그 시각에 대낮부터 옴팍집에 들어박혀 술타령을 하다니 이데 도대체 용인될 수 있는 일이오?
② “정말 큰일이올시다” 교감이 주인의 말을 받았다. “막걸리라면 농준데, 정말이지 농민들의 위생에 커다란 적신호가 아닐 수 없어요.” 교감은 그 학교에서 가장 표준말을 잘 쓰는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중학교를 동란 전에 서울서 나온 그는 전라남도 ‘교육계에 투신’하기 전에 서울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적이 있고 그것을 굉장히 자랑으로 알고 있다.
이 텍스트는 소시민적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 있는데 근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는 지방도시의 현실을 현실주의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①은 교장이 식목일날 학생들과 나무를 심지 않고 옴팍집에서 술을 마신 윤 교사 일행을 나무라는 장면이다. 애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서울과 지방에서 애국을 하면 희소가치로 더욱 빛이 난다 라는 표현 속에서 지방민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애국이니 멸공이니 새마을이니 하는 생경한 구호가 난무하던 60년대 상황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교장이 훈계를 하게 된 동기가 요리집 작부 ‘나주댁’을 놓고 젊은 신참 윤 교사와 벌이는 경쟁의식이었다는 데서 작가의 사회의식을 살필 수 있다. 서울과 시골의 이분법은 표준말을 잘 쓰고, 서울에서 잠시 교편 생활을 했다는데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교감의 ②와 같은 생각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은 중심이었을까? 서울시민들에게는 지방민과 같이 서울에 대한 동경 혹은 콤플렉스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서울시민들이 느끼는 서울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일 수 없었다.
이호철의 <적막강산>(<창작과 비평>1968.겨울)은 근대화의 선봉에 선 서울의 외면과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이 텍스트는 소령으로 예편해서 연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김영학과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노영호의 치기어린 한량짓을 통해서 급격히 근대화되는 서울의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용산에 있는 주외과 건물이 주위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지켜가고 있음을 대견해하고 삼학 대왕표 정종 두 병을 사서 들고 무작정 주외과 건물을 찾아가는 해프닝을 벌인다. 그들이 찾아간 건물 주인은 30대의 젊은 사람이었고 두 사람이 이 건물을 방문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순경까지 불러댄다.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두 사람이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가지고 간 정종병을 기울이며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한다.
③ 모두가 잇속으로 되바라지고 돈독으로 뭉쳐지고, 한결같이 빠안하게 드러내 놓여진 이 서울에서 댁만은 그렇게 완강히, 안으로 무엇인가 닫쳐 두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이 보였지요. 요즈음처럼 만사람이, 장사꾼이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나, 건설업자나 수출업자나 기술자나, 프로듀서나 디스크자키나 활자 썩은 주간들이나, 모두가 한가락으로 빠져가는 세월일수록, 그것은 희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전통이라든지 인간적인 정이 사라진 서울, 잇속이나 돈독으로 뭉쳐진 서울에서 주외과 건물같은 고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벌써 무가치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서울의 보통시민인 두 사람에게 이러한 변화는 참기 힘든 고통이다. 그들은 자꾸만 뒤처지고 있었다. 노용호 집의 베란다에서 토요일 오후마다 번번이 만사 제하고 옆집 양색시와 텁석부리 미군이 나누는 정사를 구경하는 두 사람의 부도덕성도 이러한 소외감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제 살 일에만 급해 있고, 이런 것들과 무관하게 들뜬 신바람들, 경부고속도로 같은 것들, 고층건물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혐오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점점 추해지고 있다는 자기혐오감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두 사람에게 서울은 점점 타자들의 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이렇듯 시골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동경과 콤플렉스나 서울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소외감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개발독재 정권이 전가의 보도같이 휘둘렀던 ‘잘 살아 보세’라는 슬로건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1960년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주변경관 공사를 위해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