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의 현장경제38- 투기와 바보게임

투기의 승리 비법, 바보를 찾아라


몇 년전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뚜렷한 이유없이 어느 회사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회사는 기업의 내용도 특별하지 않고, 향후 동업종의 경쟁관계가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었다. 당연히 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투자자의 눈길을 끌만한 재료도 없었다. 그런데 상승하기 시작한 주가는 멈출 줄을 몰랐다. 월평균 350원하던 주가가 70만원까지 올랐다. 옵션거래에서 가끔 100배 정도의 대박이 터지지만 주식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주가가 오른 종목이 우선주라는 것이었다. 우선주가 2,000배 오는 동안 보통주는 10배정도 올랐다. 우선주는 배당금을 조금 더 주는 대신에 주식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의결권이 없는 주권의 종류이다. 아무리 우선주를 많이 가져도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주는 50%가 넘으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주권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회사의 보통주를 단지 5%~10%만 가지고도 회장이나 사장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하나 중요한 우선주의 문제는 발행 주식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수량도 적고 활발한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선주를 가지고 있다가 돈이 필요해서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선주의 주가는 보통주에 비해서 낮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통주에 비해서 우선주는 열등재인 셈이다.당시 언론은 우선주의 이상한 급등 현상을 보도했다. 신종 주가조작 내지는 작전이라고 떠들어 댔다. 증권거래소도 그 종목의 거래내역을 정밀하게 조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좀 허무하게 끝난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집단이 주도적으로 주가를 끌어 올리고 이를 이용해서 이익을 본 흔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다수의 개인 투자자가 그 주식을 사고 팔았지만 주도 세력은 없었다. 다만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주식을 비싸게 팔아서 많은 이익을 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보다 좀 나중에 주식을 산 사람은 처음 사람보다 좀 적은 이익을 보았다. 그 보다 좀 뒤에 산 사람은 좀 더 적은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그 주식의 가격은 73만원을 정점으로 5만원까지 하락했다. 처음 350원에 주식을 산 사람은 엄청난 이익을 보았지만 73만원에 주식을 산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주식의 가격이 변하는 모습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피라미드와도 비슷하다. 처음에 시작한 몇 사람이 촉발한 게임이 확산되어 일반 투자자가 가세하고 확장되어 피라미드의 마지막에 속한 사람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된다. 문제는 내가 주식을 산 시점이 피라미드의 윗 부분인지 아랫 부분인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운명을 하늘에게 맡기고 베팅할 뿐인 것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주식을 산 후 그 가격보다 비싸게 살 바보가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식을 넘긴 사람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내 이후에 주식을 산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돈을 벌 확률은 커진다. 투기는 진정한 가치에 상관없이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거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주식의 진정한 가치는 장기적인 평균일수도 있고, 향후 배당금의 합계일수도 있다. 주식의 가치는 현재 그 회사를 청산했을 때의 가치와 미래 기대되는 수익을 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투기가 발생하면 가치를 논할 시간도 없이 가격이 변동한다. 과거 수 년간 우리 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난 열풍도 진정한 가치와는 큰 상관이 없다. 그저 자신보다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할 바보가 있으면 베팅한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바보가 가장 큰 손해를 보고 게임은 종료한다. 투기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먼저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항상 소수이고 이들에게 나머지는 모두 바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기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심각한 투기는 근절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법학·졸>

▲ 지난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한투자신탁 대강당서 열린 투기자본감시센터 창립 대토론회 모습.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