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문화‘보자기’ - 정성의 문화

알록달록 조각보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과 닮았다
보자기, 그 속에는 포용과 넉넉함 그리고 정성이 들어있다


복을 싸는 그 속엔 우리 삶의 조각들을 잇는 정성과 포용이 있었다. 장에 다녀오는 어머니가 맛있는 것이라도 사오면 보자기는 아이들에게 보물주머니였다.
과거,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보자기였다. 이 보자기는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독창적인 생활문화로서 우리 속에 녹아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포용과 넉넉함 그리고 정성이 들어있고, 밖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규방에서 생활해야 했던 여인들의 문화가 담겨있다. 이하(李夏)는 그 포용과 하나 됨을 ‘보자기’ 라는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너를 위하여/나를 묶는건/ 海東에 몇 천 년/ 푸른 언덕에/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들어앉은 사람들처럼/너를 해치지 않는 거야/ 아침해를 물고 솟아오르는/ 새떼로 펄럭이다가/때로는 둥글게/때로는 모나게/ 나를 움직여/너의 모습이 되는 거야/ 가까이 껴안고 살다보면/ 없다가도 있는 거/ 있다가도 없는 거/ 열지 않고 푸는 건 우리네/ 역사인 거지/네가 나에게로 오기 보담/ 너에게로 하나된/ 혼인 거야

남동생은 일찌막히 책을 책보에 곱게 싸 어깨에 두르고 집을 나선다. 보채는 막내를 포대기로 감싸 업고 선 누이는 부러움 가득 한 눈길로 학교 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아침 일찍 아궁이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밥내음을 담아 어머니는 밥을 한 공기 가득 퍼 아랫목에 보자기로 덮어놓았다. 철없는 동생은 어머니 몰래 슬쩍 보자기를 걷어 보았다. 뜨거운 김이 훅 코끝을 찌른다. 그러다 행여 어머니가 보실까 얼른 다시 덮어 놓았다. 어머니가 아시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한바탕 혼쭐이 날게 분명하다. 그러나 입에 고이는 군침은 어쩔 수 없었다. 해가 어둑해 질 무렵 빨갛게 물든 석양을 매고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 앞엔 한나절 따스하게 덥혀진 밥이 놓이고 가족이 함께 모인 밥상에서 두런두런 하루 일과를 웃으며 이야기한다. 밭에서 딴 상추며 깻잎에 어머니가 만든 강된장을 넣고 큼직하게 싸서 한 입 가득 먹는 그것은 행복이다.
마당 가득 땅거미가 지고, 어둔 방안 등잔불이 화륵화륵 타는 그 밑에서 어머니는 남편과 아이들의 옷을 만들고 남은 옷감 조각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었다. 붉은색, 옥색, 노르스름한 가지각색의 천들을 한 땀 한 땀 기워가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혹시 가난과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 눈물을 기워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희망을 누비고 기쁨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일게다. 붉은색 옷감 속에서 큰아이의 의젓함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옥색의 옷감 속에서 지쳐 들어오는 남편의 고단함을 느끼고, 노르스름한 옷감 속에서 밝게 웃는 귀여운 막내의 모습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가족의 희망을 이어가고 사랑을 엮어 간 것이 바로 보자기이다.

아무렇게 이어붙인 것 같지만, 그 속엔 남은 천들을 이용해 새로운 물건으로 재활용 하는 지혜가 있었다. 버리기도 아깝고 어디 딱히 사용할 곳도 없어 골칫거리인 천들을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엮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또한 귀신을 쫓기 위해서 이 보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귀신이 무서워한다는 망 무늬를 이용해 보자기를 만들어 악귀를 쫓고자 했다.
그 뿐 아니라 조각조각 불완전한 우리 삶과 생명을 하나씩 이어가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장수의 소망 또한 담겨있다. 어머니의 보자기는 만능이었다. 어머니는 3일에 한 번 이웃마을에 서는 장터에 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보자기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셨다. 그런 어머니가 장터에 갔다가 돌아오실 때를 아이들은 발자국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기다렸다. 혹시 어머니가 입안 가득 달콤한 눈깔사탕을 사오시진 않을까? 새 옷이나 신발을 사오시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들이 어머니를 찾았다.
이내 멀리서부터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면 뛰쳐나가 반기는 건 어머니 보다는 보자기다. 볼록하게 담고 있는 보자기 속에 행여나 맛난 것이라도 들어있으면 그것은 이미 보자기가 아니라 보물주머니다.
어머니는 추운 날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고, 비가 오면 비 가리개로 사용했다. 햇볕이 내리면 햇볕 가리개요, 아이들 손에 들어오게 되면 묶었다 풀렀다 하루 종일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읍내에 나갈 땐 보자기로 돈을 둘둘 말아 허리에 묶어 지갑으로 사용했고, 이웃에 마실 갈 땐 멋을 부리기 위해 머플러로 이용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보자기를 사용하신 후 그것을 훌훌 터셨다. 그러면 한 손아귀에 꼬옥 쥐어지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보자기는 그런 것이었다. 불룩하게 온갖 잡동사니를 싸 담았다 하더라도 언제든 훌훌 털어 버려 그 존재 가치를 쉽게 무(無)로 바꿀 수 있는……. 많은 것을 담고 포용하는 보자기는 요즘 가방처럼 많은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았고, 무겁지도 않았다. 가벼운 천 하나로 그 많은 것을 싸안는 것이다. 마치 가족을 싸안고 포용하는 어머니처럼…항상 보살펴 주고 감싸주던 누이가 시집을 간단다. 누이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라는 어느 실업가의 막내아들과 혼인한다고 했다. 혼례가 끝나고 누이는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시댁 사당에 고하는 이바지 음식을 준비해서 시댁으로 향했다. 그날 밤 어머니가 시댁에 보내기 위해 12가지 양념과 떡, 과일, 한과, 고기 등의 음식을 만들었다. 손수 정성을 담아 만든 음식에 어머니는 누이와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눈물과 안타까움을 함께 보자기에 쌌다. 홍색천을 네모나게 만들고 네 귀에 금전지를 꿰매어 단 폐백보에 음식을 곱게 싸서 누이 손에 들려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보자기만큼이나 무거웠다. 아마 누이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가 자라감에 따라 누이도 정성으로 보자기를 만들고 거기에 희망을 담고, 사랑을 이어가겠지. 그리고 거기서 보자기의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의 다섯 색이 조화를 이루어 나쁜 일을 없애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믿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리라.

이렇듯 보자기 속엔 간절한 소망과 그것을 바라는 믿음이 들어있었다. 보자기를 만들 때 정성을 많이 들이면 복이 온다는 믿음이 있어 보자기를 그 매체로 여기고 여기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거나 조각 천들을 이어 붙이는 등 공들여 만들어 썼다. 보자기는 복의 상징이었고, 보자기에 무언가를 싸는 것은 복을 싸는 것에 비유됐다. 그 복은 바로 만드는 정성에서 비롯된다. 이 정성은 여성성의 근간인 모성의 마음이다. 보자기를 만드는 내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는 결국 자손의 강녕을 비는 일인 것이다. 이 정성은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란 시가 대변해준다.
‘어머님 손에 들린 실은 길 떠나는 아들의 옷을 지으신다. 나그네길에 해어지지 말라고 꼼꼼히 기우시며 마음 속으론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하신다 …….’
그저 심심거리로 하는 소일로는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 정성을 다하기에 아름다움이 솟구치고 그 속에서 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우리는 흔치않은 문화 속 여인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의 문화에서 여성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500년 역사를 통틀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류 문인이나 화가가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이매창, 축향 등 극소수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름을 떨치지 못한 다른 많은 재능 있는 여자들은 그 재능을 규방공예에 쏟아냈다. 서양에서 문화의 암흑시대였던 중세 때 모자이크가 발달한 것이나 엄격한 이슬람교가 세를 떨친 아랍문화권에서 복잡한 문양의 예술적인 카펫이 발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사회가 억압 될수록 사람들은 내면으로 침잠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은 한정된 공간과 재료 속으로 들어가 복잡한 문양의 예술품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그 예술적인 조각보들 속에는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갑갑하고 억압된 삶을 살아야 했을 조선시대 여인들의 한 어린 정성이 한 땀 한 땀 묻어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은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클레도 있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들끼리의 결합, 고금을 넘어선 세계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느 것보다 가장 우리 것인 보자기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조각조각 이어 만든 우리의 보자기는 어느 추상화보다 아름답고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내의 삶의 조각들이 아름답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고단한 삶의 조각들을 포용하고 감싸 않을 수 있도록 하나하나 맞춰내고 기워내는 정성이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복을 가져다주는 보자기의 문화를 잊고 한 번 사용하고 버려버리는 비닐의 가벼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이 힘들다, 점점 각박해져간다’는 푸념 대신 보자기에 무언가를 싸 보자. 그 속엔 삶의 고단함과 괴로움도 다 포용되는 것을…….

▲사전(絲田)자수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보자기들. 조각의 어울림이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보자기 외에도 조각을 이어 만든 손수건 및 장신구도 볼 수 있었다.
<허유나 기자>  yunari8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