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27-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여름에 노란색의 둥글고 큰 꽃이 줄기 끝에 피며, 씨는 기름을 짜서 등유로 쓰거나 식용으로 사용한다. 해바라기는 일명 ‘향일화(向日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태양은 예로부터 군주를 상징하였기 때문에, 해바라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신하의 충성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류에 따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을 빗대는 말로 쓰이고 있으니, 해바라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무지한 인간들로 인해 받아야 하는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오늘은 해바라기를 소재로 한 우언 <규일설(葵日說)>을 소개한다. 『만송유고(晩松遺稿)』에 수록된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의 글이다. 작자 유병헌은 1905년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을 뿐 아니라,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탄하자 일제의 불의와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규탄하였고, 조선 사람은 조선총독부에 세금을 납부하지 말아야 하며 은사금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데라우치 총독의 송덕비 축조 계획을 규탄 저지하였고, 1918년 납세 거부로 인해 투옥되었으나 굴복하지 않고 항거하였으며, 끝내 단식 순국한 구한말의 우국지사이다. <규일설>은, 기울어가는 국운(國運)은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일신의 안위에만 골몰하는 당시 관료들의 행태를,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곧게 서서 태양만을 향하는 해바라기와 대조시킨 작품이다.
우리 집의 뜰 한 쪽 구석에서 붉은 해바라기 하나를 길렀는데, 그 됨됨이가 줄기는 곧고 가지가 없었으며 키는 8척이 채 되지 않았다. 위에는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손바닥처럼 동그랗다. 그 성품은 오로지 해를 향할 줄만 알아서 아침에는 동쪽으로 기울고 낮에는 곧게 서며 해가 저물어서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비록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쏟아지거나 연기와 먼지가 하늘에 가득 차서 햇볕을 구분하기 어려운 때라도 마치 자석이 남쪽을 가리키듯 태양을 향함은 잠시도 어그러지지 않았다. 청명한 날에도 다름이 없었으니, 이는 밝다고 해서 절행을 삼가지 않고 어둡다고 해서 행함을 게으르게 하지 않는 자이다.

무릇 신하된 자는 조석으로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주야로 나라 일에 협찬하여 묘당에 처해서는 선행을 개진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며 강호에 거처할 때는 북두에 의지하여 군주를 연모해야 한다. 그래서 승평시에는 그 즐거움을 함께 하되 위태로움을 잊지 말고 위난시에는 나라에 대한 걱정을 먼저하고 그 자신의 희비를 돌보지 않는 것이니,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는 것은 바야흐로 이 해바라기에 사양할 바가 있을것이다. 저 간신의 무리들을 살펴보면 무사할 때에는 지위를 도적질하고 녹을 탐하다가도 창황히 엎어지고 뒤집어져 나라가 위태롭게 되어 임금이 욕을 당함에 미쳐서는 제각기 일신을 온전히 하고 집안을 보전하는 방법만 찾고 임금을 걱정하고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으니, 심한 자는 원수에게 아첨하여서 ‘누구를 섬긴 들 임금이 아니랴’고 떠들면서 이전 임금의 은혜와 옛 나라의 원수를 생각지 않으니 어찌 감히 붉은 해바라기 아래 머리를 쳐들 수 있겠는가?
내 장차 세상에 이 해바라기를 두루 심어서 현자로 하여금 숭상할 바가 있음을 알게하고 불초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할 바가 있음을 알게 하리라.
윤승준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