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17-흑백사진의 진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현실의 치밀한 순간을 포착한 ‘결정적 순간’

지금은 인기 배우가 된 원빈의 초기작인 드라마 ‘광끼’를 기억하는가?
대학생 광고 동아리 학생들의 이야기로 원빈, 최강희, 이동건, 양동근……. 지금 모두 최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이 배우들 함께 출연했던 99년도 드라마이다. 우정이 아닌 사랑을 원하는 이동건에게 최강희의 시선이 머무는 한 사람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말없이 존재하는 원빈이란 사람이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바라보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원빈이 최강희에게 널 항상 지켜보고 있고, 다가가선 안 된다고 말하는 대사 중 인용하는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이다. 그 후로 난 브레송이란 작가가 궁금해졌고 그 어떤 조건 없이 그의 팬이 됐다. 그 땐 브레송이란 작가를 전혀 몰랐는데도 말이다.

브레송을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 몇 가지 중 하나인 원빈, 그리고 그 다음은 바로 소형 카메라 라이카다.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카르티에 브레송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비롯한 당대의 여러 예술적 경향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조건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후일 그가 사진 작업을 통해 평생 이미지를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27년 그림공부를 위해서 체류하던 아프리카에서 처음 라이카 카메라를 구입한 그는 스물두 살 무렵이던 1930년 마르세유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평생 라이카 카메라만을 애용했다. 당시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가 라이카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르포르타주 사진가로 활동한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1932년부터 2년 동안 스페인 지중해 연안, 멕시코, 미국의 각지를 다니면서 각종 사진을 찍게 되는데, “폐허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때에 그가 찍은 대표작이다. 1936년 봄, 그는 파리의 한 신문사 사진부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시험을 보았는데 낙방하고 만다. 이때 헝가리 출신의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세이무어도 응시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그날 우연히 들른 어느 카페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날의 만남에서 의기투합한 그들은 후일 <MAGNUM>이란 사진작가들의 연합통신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후에 이 <MAGNUM>은 20세기 초 근대사진의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FSA>, <LIFE-LOOK>와 함께 하나의 축을 이룬다. <MAGNUM>, 이것이 그를 떠올리는 세 번째 키워드 이다.

그리고 네 번째 그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라 할 수 있는 것은 <결정적 순간Image a La Sauvett, The Decisive moment>이다. 신비하지만 진실한 한 장의 흑백사진, 달려가는 자전거의 바퀴 뒤로 남은 그 풍경과 같은 결정적 순간. 위에서 잠깐 언급한 브레송의 르포르타주 사진가 이야기는 2차대전에 종군하여 영화사진반에 참가하고 1940년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어 여러 번 시도 끝에 탈출하게 되는 브레송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사진기자들의 불안한 지위와 특정 매체(신문사와 잡지)의 틀에 박힌 편집 방향과 포맷으로부터 벗어나 사진가의 개인의 관심과 개성 그리고 자유로운 해석을 보장받기 위해 창립된 사진 에이전시 <MAGNUM>의 창립의도와 연장선으로 결정적 순간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다. 만약 그가 단지 그냥 한 명의 충실한 보도사진가라면 그가 지금처럼 유명한 사진작가로 추앙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MAGNUM>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천재성은 매그넘의 모험을 따랐으나 자기 자신은 그보다 더 멀리 앞서 나갔다. 그러나 1933년 스페인 여행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르포르타주 사진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두뇌를 써서 가공한 이미지보다 “결정적 순간”의 탐구에 훨씬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진은 어떤 사실의 의미와 그 사실을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가리키는 형태의 엄격한 구성이 한 순간에 동시에 인지되는 것이다.” 현실의 어떤 치밀한 순간을 포착하고 또 형태들이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미지에서는 다소 차가우면서도 섬세한 멋이 나며, 그것은 찬양도 비판도 아닌 단지 현실을 꼼꼼히 분해하고 거기에 어떤 스타일을 결부시키는 것이다.

2004년 8월 2일 그가 사망했다는 짧은 신문의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차가운 시선 뒤에 감추어진 브레송의 시선이 머문 따뜻한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위안하는 마음으로 10월까지 하는 그의 사진전을 보러가야겠다. 이 구월에…….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