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

28-매 이야기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은 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이 거세게 몰아치던 19세기 후반에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주체적 사고에 따라 처신했던 절조 높은 선비이자 문장가이다. 그는 시대적 흐름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개화를 주체적 입장에서 이룩하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수구적 위정척사파를 반대한 것은 물론 실(實)이 없는 허명개화(虛名開化)에도 반대하였다. 『명미당집(明美堂集)』 권 10에 실려 있는 「응설(鷹說)」은 개화에 대한 그의 이와 같은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우언이다.

봉황과 난새의 덕은 화려함에 있고 학의 덕은 청초함에 있으나, 매의 덕은 공격하는 것에 있다. 모름지기 공격하는 것은 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미 봉황이나 난새, 학이 되지 못하고 매가 되어서 화려한 깃털과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지 못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뿐이니, 이는 애당초 그를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다. 공격하도록 하였으되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봉황이나 난새, 학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매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을 사람 중에 매를 잡은 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李) 선생에게 바치니, 이 선생이 매로 하여금 사냥을 하도록 하였다. 언덕 높이 올라 사방을 둘러봄에, 매는 바야흐로 머리를 들고 날개를 펼치며 재빠르게 날며 주위를 살폈다. 그 모습이 매우 사나와 보였다. 잠시 후 꿩이 앞에서 날아오르자 매는 떨치고 일어나 추격함에 거의 낚아챌 듯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흘겨보며 살피더니 뒤로 물러서며 머뭇거리자, 그 사이에 꿩은 이미 빨리 날아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또 얼마 있다가 토끼가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일어났으나, 매는 다시 분발하여 추격하지도 않고 더욱 태연히 쳐다보고 더욱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은 오히려 토끼를 두려워하는 듯하였다. 토끼는 유유히 지나가 버렸다. 종일토록 이처럼 하여 끝내 잡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이 선생은 “이 매를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하며 놓아버렸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매는 어질고 또 지혜롭습니다. 공격할 수 있으되 공격하지 않았으니, 어질지 않습니까? 또 사람들이 그가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필시 놓아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지혜롭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여기에 매여 있을 것입니다.”

공격하는 것을 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공격하도록 타고난 것이 매라면, 매는 공격해야 매인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매일 수 없다. 그런데 이 선생의 매는 사냥을 하지 않으니 어디에서 매의 매다운 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매가 매답지 않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한 매를 두고 어진 매라고 하고, 또 지혜로운 매라고 말하는 이가 있으나, 과연 그러한 매가 어진 매이고 지혜로운 매인가?
이름과 실상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이다. 명실(名實)이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은 비단 구한말 개화를 둘러싼 상황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實)이 없는 말 뿐인 개화를 반대했던 작자의 태도를 고려할 때, 「응설」은 당시 유길준(兪吉濬)으로 대표되는 개화파를 겨냥한 우언으로 읽을 수 있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