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34.60년대 서울의 목판화 :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읽기

당국은 낑낑거리고 신문은 헛소리만 지르는 서울
60년대 서울은 서울내기보다 독한 사람들만이 입성할 수 있다

서울에 사람은 만원이라해도
한사람 한사람을 보면 쓸쓸한 사람이었고
연줄을 느낄만한 근거도 없었다

서울이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의 수도 한양과 서울의 관계는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재래의 서울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서울은 개발독재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근대화로 새롭게 재건되었다. 60년대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무리한 근대화 정책은 농촌 공동체 사회를 붕괴시켜 이농현상을 심화시켰고 서울의 인구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만들었다. 급속한 인구집중으로 서울의 풍속과 생태는 서서히 자기모습을 잃게 되었고, 사회병리 현상 또한 다양해졌다. 이호철의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는 이러한 60년대 서울의 풍속을 숙련된 솜씨로 찍어낸 목판화였다.
이 소설은 60년대 후반기라는 시대배경 속에 길녀라는 여주인공의 서울 정착기를 다루고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길녀는 여학교 때 백일장에도 나가던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군대에서 두 오빠가 죽고 술주정꾼으로 전락한 아버지 때문에 가세가 기울자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된다. 이러한 길녀의 상경은 품팔이를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대 농촌부녀자들의 상경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서울은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삼백팔십이나 되는 대도시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당시 서울은 삼백 칠십만이 살기에는 너무나 좁았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헛소리만 지른다. 거리에는 사철 차들이 붐비고 여관, 다방, 음식점, 술집, 극장, 당구장, 바둑집이 우글우글하다. 입으로는 못살겠다고 저저금 아우성인데, 다방도 음식점도, 바둑집도, 당구장도, 삼류극장도 늘어만 가고 있다’ 점점 대도시로 변한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병리 현상이 심화된다는 말이다.
‘서울에 사람은 만원이어도 한사람 한사람을 보면 모두가 쓸쓸한 사람’이었고, ‘피차에 이렇다 하여 연줄을 느낄만한 근거도 없고 심각하게 연대감을 느낄 만한 끈터귀도 없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파편화된 삶을 영위할 뿐이었다. 이러한 삭막한 서울에서 길녀는 다방에서 일하다 결국 주방사내에게 순정을 빼앗기고 온갖 사내들에게 웃음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길녀는 서울내기가 아니라 촌여자였다. 길녀의 친구 미경은 ‘치사한 것이 정이니라. 정만 들었다 카면 서울바닥에선 계집 신세 조오지는 날이다. 정신 바아짝 차려야제, 크은일 나지, 크은일 나’라고 충고를 하지만 길녀에게는 아직까지 고향의 순박한 정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길녀는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비관적이기 보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길녀가 새로 생긴 서울의 고층빌딩 앞을 지나가면서 ‘아닌 게 아니라 이 앞을 지나가며 이 집이 바로 우리나라 첫째가는 부잣집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 어쩐지 자기도 서울 올라와 출세나 한 듯 괜시레 우쭐해’지는 장면에서도 길녀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조폐공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들이 제일 큰 땡을 잡게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란 잘 아시다시피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게 한 가운데 들어앉은 몇 안되는 사람들로부터 바깥으로 향하여 불꽃이 튀어 나가듯 혹은 물이랑이 퍼져나가듯 몇 겹으로 층이 들러싸인다. 첫째 그룹, 둘째 그룹, 셋째 그룹, 이렇게 수십 겹이 둘러싸인다. 첫째 그룹이나 둘째 그룹에 가까이 속하면 속할수록 위엄이 늠름하고 혈색은 좋으나 돈맛을 알아서 외곬으로 영악해진다. 천신만고로 얻은 현 지체를 유지하려고 전전긍긍이다. 한편 바깥쪽으로 가면 갈수록 타고난 대로의 구수한 인정은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질구레한 싸움은 노상 끊이지 않는다.”

길녀는 서울의 인구 구성을 조폐공사와 연관시켜서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자본과 밀접한 소수의 권력층과 그 언저리 사람들은 정보다는 돈이 먼저인 영악한 사람이지만 그 바깥쪽 사람들은 타고난 대로의 구수한 인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본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궁핍에 가까운 생활고 때문에 자신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을 표현도 못하고 각박하게 살아간다. 그리하여 ‘성실보다는 요령, 일관한 신념보다도 눈치, 진실한 우정보다도 잇속, 협동보다도 적의’ 가 서울하늘을 덮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서로를 등쳐먹는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길녀는 원래부터 이러한 싸움터에서 승리할 성격이 아니었다. 월남하여 브로커 생활을 하는 남동표에게 정을 주고 살림을 차리지만 서울의 밑바닥 인생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남동표 또한 사기꾼이었을 뿐이었다. 한 푼이라고 더 벌기 위해 종삼 창녀촌으로 옮겼던 친구 미경은 거푸 유산을 한 끝에 비참하게 임종을 맞는다. 서울에 지하도 공사도 벌어지고 육교 공사도 벌어지고 교외 도로 공사도 이곳저곳 벌어지고 있는데 친구 미경이는 죽어 가고 있었다. 서울의 발전은 길녀와 길녀 주위 사람들하고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길녀와 관계 맺는 사람들은 모두 하루에 목매어 살아가는 세속인이며, 구조적 모순에 희생당하는 비극적인 인물들일 뿐이다. 길녀는 결국 서울에 온전히 정착을 못한다. 복실엄마와 같이 서울내기보다 독한 사람들만이 서울에 당당히 입성을 할 뿐이었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1960년대 명동의 모습. 살기 위해 서울로 모여든 이들은 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