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18
우리 민족의 대중음악 ‘트로트’

힘겨운 시련을 함께 견딘 애환과 희망의 노래 ‘트로트’

우리 대중음악의 기원을 찾는다면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기엔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자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매스미디어에 의한 그리고 대중을 아우르는 하나의 공동체 문화의 한 형태로서의 대중음악을 찾아본다면 그 시작은 아마 1930년대 트로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같다’라고 말한 것은 아직도 이 점에 관한 여러 의견이 난무하고 있으며 그리고 나의 생각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강요하고픈 마음이 없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문화로서의 음악의 시작을 찾는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궁색한 변명의 한 표현이다.
1930년대는 우리 역사의 한 오점으로 남겨져있는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점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문화가 사회나 정치와의 상관관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점에서 볼 때 이런 특수한 시대의 문화를 단순히 문화 자체에서만 이해하려 한다면 그건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한 전반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불가능케 한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 하고 싶다.
1930년대 우리나라 트로트 양식의 전범은 당연히 일본의 엥카였고 일본의 엥카 역시 서구 트로트의 영향을 직접 받지는 않았다. 물론 당시에는 어디에서도 트로트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해방이후 대중음악의 발전으로 새로의 양식이 계속 생겨나면서 이 양식을 지칭할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해방 후에 엥카라는 일본식 용어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서양풍의 대중가요 양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이에 대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이 겹쳐져 이 양식은 뒤떨어진 것 촌스러운 것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뽕짝’이라는 비하적 명칭은 이 때 만들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트로트란 말은 ‘뽕짝’이라는 비하적 어감의 명칭을 쓰지 않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 여겨진다. 말하자면 서구의 트로트와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뽕짝, 엥카의 2박자, 4박자와 가장 유사한 리듬 패턴의 명칭을 빌려 온 것이다. 지금은 트로트라는 용어가 비교적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칭이다.
이젠 흐지부지 된 일이지만 트로트의 왜색성 시비는 우리나라 현대 대중음악계의 가장 격렬한 논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84년말부터 1985년 초까지 월간지 『음악동아』와 『한국일보』에서 벌여진 ‘뽕짝 논쟁’은 고급 음악계의 작곡자와 음악평론가 대중음아계의 작곡가, 작사가, 사회학자까지 포함된 꽤 큰 논쟁이었으며, 논쟁이 진행됨에 따라 음악 자체의 왜색성 시비로부터 트로트 양식의 사회적 의미의 평가로 내용이 확대되었다. 음악의 왜색성에 관해서는 왜색을 주장하는 황병기가 일본 전통 음악계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근거 있는 주장을 한 것에 비해, 트로트의 옹호측에 선 서우석이나 박춘석 등은 생성의 근거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집중함으로써 이에 대한 근거 있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일본 전통 음계와의 유사성을 들어 요나누키 단음계의 단조 트로트의 왜색성을 주장하는 이러한 논의는 이후 노동은으로 이어지는데, 노동은은 아예 이를 일본 전통음계인 미야코부시라 규정함으로써, 뒤에 민경찬이 반박할 여지를 남겼다. 1980년대 일한 분석과 주장은 이전에 종종 주장되던 ‘엥카의 한국 원류설’을 뒤집은 것으로 이후 양식의 일본 유입설은 거의 정설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민경찬은 이에 대해 반박하는데 그 주장의 요지는 단조 트로트의 구성음이 미야코부시와 같다는 것만으로는 이 양식의 왜색성을 주장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구성음이 같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종류의 음악 문법이 생겨 날 수 있다는 것이며 미야코부시와 단조 트로트는 구성음이 같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문법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 이후에도 많은 이론적 역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한 많은 주장들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격해지는 양쪽간의 논쟁은 논쟁을 넘어서 자존심을 건 싸움에 이르기 까지 되었다. 주장이 아닌 억지스러운 의견들을 내 놓기 시작했고 이 논쟁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의 가치 있는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다. 물론 트로트가 점점 우리의 대중음악계에서 자리를 잃어가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린 점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논쟁의 불필요성을 시간이 지날수록 인식해서 일지도 모른다.
트로트가 왜색이건 우리 고유의 것이건 지금 현재적 상황으로 봐서는 우리 대중들에게는 하나의 대중음악의 장르로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고 해서 우리의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따로 규정지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시작이 어떠했건 트로트는 그동안 우리 민족들이 힘겨운 시련을 겪을 때 마다 옆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고 그리고 그 시련을 함께 이겨낸 민족의 애환과 희망을 담은 대중음악이다.
이상지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5>
▲ 트로트는 수십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애환과 희망을 담은 대중음악이었다
이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