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쟁점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의 쟁점은 실시여부가 아닌 실시 시기

“정부는 현재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해 아무런 실행계획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실행에 옮길 계획이 없다.”
지난 24일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화폐제도개편에 관해 논쟁의 고삐를 일단 붙들어 맸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화폐제도 개편은 5만원권과 10만원권 지폐의 제조, 위조지폐에 대한 보안 및 화폐 품질의 개선, 화폐단위를 1000대 1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 3가지 변화를 말한다.
현재 리디노미네이션을 둘러싼 논의의 쟁점은 두 가지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단점을 놓고 실시 여부에 대한 찬·반과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적정한 실시시기에 대한 의견 차이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2년 새로운 화폐단위가 도입된 지 42년이 지난 현재 경상GDP(국민총생산)는 2천1백30배, 소비자물가는 48배 올랐다. 화폐단위를 변경하게되면 원화의 가치를 높이고 거래 시 지불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또 외국의 지폐에 비해 위조에 취약한 단점과 함께 지폐 품질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일반적인 장·단점은 일상거래 및 계산과 표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화폐가치의 상승으로 우리나라 화폐에 대한 대외적 위상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를 억제하며 지하자금을 지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막대한 화폐교체 비용과 동시에 각종 현금 자동화기기의 교체와 표기의 혼란, 부당한 가격인상, 변화에 따른 국민의 불안감 등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쟁점의 중심에 서있는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도 리디노미네션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두고 찬성과 반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며 물가상승의 가능성은 없거나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정경제부는 끝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개편의 시기는 물론 공론화까지 정지시켜 놓은 상황이다. 지하자금의 양성화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인 자금 통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는 화폐 단위를 변경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예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색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금융연구원은 화폐 단위 변경 시 경제 운용에 실패한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시민단체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국회는 화폐 단위 변경을 위한 의원 입법 등을 추진하고 나섰다. 반면에 세계일보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의견을 지난 2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시내 주요대학 경제학과 교수 36명과 경제연구소 박사급 연구위원 14명 등 무작위로 선정한 경제학자 5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을 실시한 결과 찬성이 66%(33명), 반대가 24%(12명)로 나타나 학계에서는 별다른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국은행은 지난 2002년 6월부터 진행한 리디노미네이션을 위한 조사 작업 및 연구를 이미 완료했으며 정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정부가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을 경우 본격적인 공론화를 거쳐 1년 정도의 실무 준비를 하고 3년 후에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된 불안이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하고있다.
이와 관련 우리대학 상경학부 경제학전공 심경섭 교수는 “장기적으로 화폐 단위 변경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 환경과 시기가 적정해야 한다. 지금은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다”라고 말하며 “먼저 충분한 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시기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 리디노미네이션 실시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한국은행이 1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지수 조사 결과는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늘면서 6개월 내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본적인 응급처치도 이루어지지 않은 의식 불명의 환자에게 아무리 좋은 수술도 환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