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마을 전경.
사진2. ▲곡식을 찧던 절구


사라지는 한국문화

보릿고개 - ‘가난’의 문화를 찾아서
현장취재

가족과 이웃이 있어, 견딘 보릿고개
그 시절엔,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었다


“몇 십년의 세월을 지키던 돌담에서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나온다”

“우리의 오뉴월은 곡식이 부족해지고, 살기 위해 빚을 지고 그래서 자꾸만 가난해져 갔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하루에 서너번 운행한다는 버스를 운 좋게 잡아타고 오른쪽 창으로 끝없이 논이 펼쳐진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고향에 도착했다. 옛날, 작은 마을에 가득하던 짚으로 쌓아올린 둥그스름한 초가집 대신 투박한 벽돌집과 꼭대기에 십자가를 단 교회가 보인다. 몇 십 년의 세월로 변해 버린 마을을 보며 옛 집을 찾아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살고 보았던 집의 모양은 바뀌었지만 그 집을 감싸고 있던 돌담은 그대로 남아있다. 반가운 마음에 돌담을 쓰다듬으니 가을볕의 온기와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묻어 나온다. 가난해서 힘들었지만 작은 행복과 정이 있었던 시절…….
산등성이 사이로 해가 반쯤 떠오르자 앞마당 수탉이 기다렸다는 듯 목청을 다듬기 시작한다. 수탉이 울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서둘러 마당으로, 부엌으로 할 일을 찾아 나선다. 가마솥에 고사리를 삶고 있는 어머니와 아침상을 차리는 누이, 소의 여물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졸음에 겨운 내 눈 사이로 들어온다. 어른들은 허리를 필 잠깐의 여유도 없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린 막내는 어제 저녁에 먹은 나물죽이 부족했는지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칭얼거린다. 그런 막내를 달래며 누이는 보리밥 한 덩이와 간장 한 종지, 고사리가 놓인 밥상을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며 남은 곡식이 얼마 없다는 한탄을 조심스럽게 늘어놓는다.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버지의 한숨이 터져 나오고, 누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입에만 들어가면 뭐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식사시간인데도 아침 식사는 유난히 맛이 없었고 목에서도 넘어가지 않았다.
말없이 보리쌀을 씹던 아버지는 남은 밥 한 숟가락을 막내의 밥그릇에 얹어주고는 농기구들을 챙기신다. 누이도 그 옆에서 밭에 나갈 채비를 한다. 봄에 캤던 고사리를 아침내 삶던 어머니는 고사리를 바구니에 옮겨 담고 머리 위로 올렸다. 뜨거운 물이 바구니 틈 사이로 어머니의 얼굴을 따라 주르르 흘러내리지만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여념이 없다. 막내는 기둥을 붙잡고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져 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문 밖을 쳐다본다.
“철아, 나무하러 가자.”
하루에 지게 한가득 다섯 번 정도 나무를 해와야 한다. 한참 잔가지를 줍던 막내가 또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부드러운 속껍질을 입으로 갉아 막내에게 건넨다. 아우는 보릿고개가 뭔지 모르지만 이맘때면 먹을 것이 줄어들고 그럴 때는 나무껍질이라도, 썩은 감자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투정 없이 받아먹는다.
지게 한가득 나무를 해서 돌아오니 벌써 해가 중천에 올라와 있다. 집에 있다가는 그나마도 없는 반찬에 손을 댈까 싶어 막내를 데리고 다시 산 어귀로 향했다. 멀리에서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어서 오라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댄다.

"와 이렇게 늦었노? 내가 산딸기 많은 곳 봐놨다. 어여 가자.”
풀숲을 헤집고 다니면서 찔레, 오디, 산딸기 등도 먹고 설익은 열매도 보이는 대로 따먹는다.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부드러운 느낌에, 약간의 달콤함, 그리고 약간의 포만감을 느끼며 산열매를 따먹는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으면 계곡으로 향한다. 계곡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먹이를 노리고 있던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기절시켜 뒷다리를 실이나 끈으로 맨다. 물 속에서 야무지게 생긴 돌맹이를 주워 기절한 개구리를 찧어 계곡에 담가놓으면 가재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낚시대가 된다. 얼마 후면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오는 가재가 개구리를 집게로 집는다. 그 순간에 개구리를 들어올리면 두 세 마리의 가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손이라도 물릴세라 조심조심 준비해간 통에 옮겨 담는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통에는 가재가 가득 쌓여가고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붉어지는 하늘을 보며 내일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가재를 한 보새기 넘게 들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붉은 노을이 앞마당까지 찾아들었다. 노을을 등진 채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누이에게 가재를 내밀었다. 그러자 누이는 뒷마당 한켠에 세워두었던 뿌연 먼지가 내려앉은 절구를 꺼내왔다.

먼지가 대충 털어진 것 같으면 그 속에 가재를 넣고 방아질을 시작한다. 방아질을 할 때마다 껍질과 살이 분리되는 가재를 보니 쌀밥 생각이 난다. 가재가 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절구가 온갖 물건을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의 그릇 화수분이라면…….
힘없이 절구를 내리치던 누이는 가재 살만을 골라 부엌으로 가져가 물과 계란을 넣고 끓이더니 곧 저녁밥상을 내왔다. 저녁상에는 보리개떡과 가재 살로 만든 국이 전부다. 누이는 보리개떡 두어 개를 그릇에 옮겨 담더니 옆집에 가져다주고 돌아온다. 없어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 마을 모든 이들의 마음이다.
보리개떡을 한 입 베어 우적우적 씹어 삼키니 따끔따끔한 보리겨의 느낌이 느껴진다. 이런 보리겨, 나무 뿌리, 설익은 과일 등의 거친 음식들을 먹다 보면 갑자기 배가 아프기 일쑤다. 이럴 때면 누이는 마늘 세 쪽을 찧어 된장에 발라준다. 그걸 먹으면 아팠던 배가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낫는다.
누이는 저녁상을 치우고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장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혹시 아직까지 남은 고사리를 팔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어느덧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반딧불이가 마을을 밝혀주고 있다. 막내는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기다린다. 하나, 둘, 셋……. 반딧불이의 숫자를 세다가 지루해 졌는지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꽁무니를 떼어 자기 이마에 붙여본다. 작지만 밝게 불을 반짝이며 막내의 이마에 딱하니 붙어있다. 그러다가 금새 싫증이 났는지 방에 들어와 누나 옆에 엎드려 노래를 흥얼거리다 이내 잠이 든다. 어둠은 점점 깊어 가는데 어머니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다. 아버지도 잠이 들고, 나도 깊은 잠에 빠져들 때 쯤 차가운 치맛자락이 손가락을 스친다. 어머니는 들어오자마자 누이에게 고사리를 다 팔지 못해 곡식을 사오지 못했다며 내일 끼니를 걱정하신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잠시 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커다란 쌀가마를 마당에 털썩 내려놓았다. 아침 밥상에는 하얀 쌀밥이 올라왔다.
“이제 우리 매일 쌀밥 먹는기가?”

막내는 나무 뿌리를 먹는 날이 끝난 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 보릿고개를 넘지 못했다. 살아서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아버지는 지주에게 쌀을 빌려오셨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누이와 아버지는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가고 어머니는 뜨거운 물이 흐르는 고사리를 머리에 이고 장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이 나물죽도 보리밥도 아닌 쌀밥이었지만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나무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아버지께 잠시 들렀다. 부자는 논둑에 앉아 아무 말 않고 익어 가는 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부지, 벼가 노래졌다. 이 쌀 다 우리꺼제?”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막내가 바라보는 반대쪽 하늘을 멀리 바라본다. 이 논의 쌀은 우리 것이 될 수 없었다. 소작농이기 때문에 소작비를 내야하고, 오늘 빌려온 쌀과 그 이자를 내야 하며 작년에, 재작년에 빌려온 쌀과 이자도 갚아야 한다. 그러면 또다시 가난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또 쌀을 빌리고,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우리 가족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겠지. 보릿고개를 다 넘으려면 아직 멀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다. 내 생활이 너무 편안해져서 보릿고개가 있었는지조차 잊고 살았는데……. 멀리서 바라보던 돌담은 자신의 몸에 그 모든 세월을 담고 있었다.
장에서 애타게 고사리를 파는 어머니의 모습, 배가 고프다며 훌쩍거리는 막내,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던 누이,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 굽은 아버지의 허리.
그리고 산열매를 따먹고 가재를 잡던 친구들, 따뜻한 감자범벅 한 그릇을 내밀던 이웃집 아주머니, 빚을 걱정하는 이웃들의 모습, 그들의 눈물.
우리의 오뉴월은 어김없이 곡식이 부족해지고, 살기 위해 빚을 지고 그래서 자꾸만 가난해 졌다. 하지만 힘들었기에 이웃과 가족간의 정이 더 돈독할 수 있었고,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줄 알았다. 집의 형태는 변했어도 돌담은 그대로 유지한 것은 보릿고개 시절의 아픔과 정을 잊지 않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황영아 기자>  baby22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