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29 간사한 무리들을 등용치 마소서

예나 지금이나 항상 간사한 무리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암적 존재이다. 게다가 이런 자들이 직장이나 조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니 내치기도 결코 쉽지 않다. 여하튼 요즈음도 이러한 무리들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간신이 큰 충신처럼 보인다는 옛말도 있듯이, 본시 간사한 자들이란 아첨과 술수에만 능할 뿐 능력은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부정부패와 중상모략, 거짓말만 일삼고 일도 입으로만 하는 무리들이다. 필자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속물들을 본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중상모략을 당한 경험도 있다. 그것도 윗사람에게 당했으니 그 억울함과 허탈감, 비애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구태여 이런 인간에게 대응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람에게 연민의 정과 함께 인간적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 자신의 처신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반성할 따름이다. 그런데 간사한 자에게 중상모략의 얘기를 듣고 이를 믿는 귀가 얇은 사람은 참으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도 책임지고 소신있게 할 수 없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정치가, 재벌총수 등과 같은 사회지도자급 인사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사회지도자급 인사들이 간사한 자들을 잘못 기용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미암일기』를 보면 간사한 무리들을 등용치 말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옥당에서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소인들의 마음은 한번 권세와 이익을 잃게 되면 분을 머금고 독을 길러 갈수록 더욱 심해지니, 만약 다시 세상에 쓰이게 되는 날이면 간사한 꾀와 흉악한 행동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므로 어진 사람은 반드시 이 소인들을 깊이 미워하고 매섭게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일찌감치 분별하지 못하고 한번 너그러이 놓아주는 길을 열어놓으면, 간사한 무리들이 제 세상이나 만난 것처럼 다투어 벼슬길에 진출하기를 꾀하여 후일의 무궁한 화는 이루 형언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신들은 어제 벼슬길을 터주자는 의(議)를 엎드려 보고 한심함을 이길 수 없었사오나, 다만 성명(聖明)이 위에 계시니 그 소인들의 정상(情狀)을 반드시 다 환히 아시고 선뜻 버리실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옵니다. 김여부(金汝孚)는 본시 나라를 위태한 지경으로 몰아넣은 못된 사람으로, 윤원형(尹元衡)의 문하에 아부하여 몰래 사사로이 분(憤)을 품고 선비들을 모해하였으며, 김진(金鎭)·이명(李銘)은 서로 심복이 되어 기세를 조성하였으니, 당시 세 놈들이 결탁하여 화를 조정에 전가시킨 형상은 너무도 참혹하여 차마 말로 할 수 없사옵니다. 임복(林復)은 음흉하고 교활하여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해서 선량(善良)들을 모함하였으며, 강극성(姜克誠)은 이양(李樑)에게 빌붙어 그 악을 종용하였으니, 이러한 죄상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옵니다. 그들을 국가에서 관계됨이 없다고 하여 풀어주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것을 소통해 준다면 소인을 다시 등용한 화근이 되어 장차 국가에 미쳐서 구원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면한 천재지변을 구제하는 일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온데 도리어 음사하고 악독한 자들을 수용하여 하늘의 견책에 응하려하시니, 신 등이 그윽이 살피건대 인심은 더욱 답답해지고 하늘의 노여움 은 끝내 풀리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

무릇 흉한 사람의 성질은 악한 짓을 하는데 익숙하고 자포자기에 빠져 다만 시기심과 잔인한 마음만 조장시킬 뿐 이옵고 마음씨를 고칠 이치는 만무한 법인데, 예전 악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어찌 이와 같은 귀역(鬼 )의 무리에게서 바랄 수 있겠사옵니까? 한 사람의 소인의 등용도 오히려 국가의 화란을 초래 할 수 있는 법이온데 하물며 음사한 무리들을 등용하여 조정에 두게 되면 후일의 화가 어찌 되겠사옵니까? 관계된 바가 지극히 중하옵기로 조야(朝野)가 흉흉하오니 청컨대 김여부 등에 대한 소통(疏通)의 명을 환수하여 주시옵소서”
일부 대신들이 윤원형 일파로 악행을 일삼았던 인물들을 조정에 다시 등용시키려 하자, 원·사헌부·홍문관 등 삼사에서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간사한 자들은 조그만 틈만 보이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부화뇌동하거나 동조하면 자칫 신세를 망치기 십상이다. 『역경(易經)』에 보면 ‘소인은 어질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의롭지 못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익이 되는 것을 보지 않으면 힘쓰려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소인은 본래 어질지 못한 짓을 해도 수치를 모르고, 의롭지 못한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힘쓰려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멀리해야만 한다. 간사한 자들이 득세를 못하는 세상,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이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