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

29 서생과 우물

오늘 소개하는 <서생과 우물>은 『매일신문』 1898년 4월 20일자에 실린 글이다. 하도 기이한 일이라서 소개한다고 한 이 이야기는, 자신도 한 때 전해들은 이야기여서 그 뒷이야기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동도 산골짜기에 커다란 마을이 하나 있는데, 마을 한 가운데 우물이 있어 동리 사람들은 모두 그 우물을 먹고 살았다. 서울 사는 서생(書生) 하나가 산천을 유람하기 위해 집을 나서서 사방으로 다니다가 마침 그 곳에 이르러 한 집을 찾아 들어가 주인에게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주인은 서생의 말은 듣지 않고 무례히 욕하며 달려들어 때리려 하였다. 급히 몸을 피한 서생이 다른 사람을 보고 그 집 주인이 실성하였다고 말하였으나, 그 사람도 또한 서생을 다짜고짜 때리려 하였다. 어쩔 도리가 없게 된 서생은 산속에 몸을 숨긴 채 밤을 지냈다.
이튿날 마을에 내려가 그곳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보니 네다섯 살 난 어린이들은 천품(天稟)을 온전히 지키고 있었으나, 장성한 이들은 광기(狂氣)를 발하여 같은 동네 사람끼리도 서로 욕하고 치고 박고 싸웠다. 심지어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그 광경을 본 서생은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마을의 지리를 살펴보니, 여러 사람의 광기는 우물이 괴악(怪惡)한 때문이었다.
이에 서생은 마을로 다시 내려가 금덩이를 나누어주며 사람을 꾀었다.

미친 병 들린 사람이라도 재욕은 없지 않았기 때문에 금덩이를 받은 이들은 서생의 지휘를 따랐다. 서생은 네다섯 사람을 데리고 명산을 찾아가 몇 개월을 머물며 좋은 물을 먹여 시험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광증이 없어지고 맑은 정신을 되찾았다. 마침내 "우리 동리 사람들이 모두 미쳐서 사람이 나면 본래 미치는 법인가 믿었더니, 오늘 서생을 따라 이 곳에 와 여러 행위를 보니 진실로 그 다름을 깨닫지 못하겠소이다." 하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서생은 "그대 동리 사람들이 온통 미친 고로 서로 흉을 몰랐으나, 실은 그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우물이 괴악하여 그 물을 오래 먹으면 안 미칠 자가 없소이다. 그대들이 오늘날 좋은 물을 먹고 병 고친 증거가 확실하니, 이런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그 우물을 급히 없애 여러 사람의 맑은 정신을 회복케 하시오." 하였다.
정신을 되찾은 이들은 서생에게 수없이 절하며 고마워하였다. 서생과 이별한 이들은 마을로 내려가 자세한 사연을 설명하고,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우물을 급히 없애고 다른 우물을 파서 모든 사람의 광증을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리 사람들은 크게 노하여 "저 놈들이 어떤 미친놈을 따라 가 미친 물을 먹고 속이 뒤집어져서 조상 적부터 몇 천 년 내려오며 먹는 우물을 졸지에 없애자고 하니, 저 놈은 조상을 욕하는 자이고 우리 모두의 원수로다."라고 하면서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다섯 사람은 이같은 마을 사람들의 기세를 감당할 수 없을 듯하여 마침내 거짓 미친 체하며, 밤이면 남 몰래 다른 물을 떠다 먹으며 그 우물을 없애기 위해 주야로 애를 썼다. 그러나 여러 광인들이 그 기미를 알고 이들이 다른 물을 먹는다고 시비하니, 다섯 사람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그 우물의 병근을 깨달은 바에 차라리 성한 대로 죽을지언정 그 우물을 다시 먹고 또 미칠 수는 없다.'''' 하고는, 마침내 행장을 차려 서생의 종적을 찾아 갔다.
19세기 후반, 물밀 듯 밀어닥치기 시작한 서구문명과 사상은 오랜 기간 우리의 삶과 의식 세계를 지탱하여 온 전통적인 사상·문명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밖으로부터 밀어닥친 거센 도전에 대하여 우리 사회 내부에서의 응전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조상 대대로 수천 년 이어져 온 생명의 젖줄을 광기의 근원이라고 부정하고, 새로운 샘물에서 생명수를 길어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당시 개화와 수구의 충돌을 빗댄 우언으로 읽을 수 있다. 윤승준<교양·강의전담> 초빙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