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

36.서울은 개발중! 개발과 슬럼화 속의 인간

부를 획득한 특권층만 머무는 공존이 끝난 성북동
평창동·구기동·한남동·강남으로 이어지며 빈부격차 가시화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끝난,
더이상 서울에서
비둘기들이 살아갈 수
없음을 그렸다

▲ 북한산과 어우러진 성북동 주택가의 모습.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 긴급한 전후 복구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공간의 구획을 확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울에 새로운 인구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이들은 해방과 전쟁 이후 유입된 인구들과 속성이 달랐다. 이들은 강력한 산업화 정책의 영향으로 농촌으로부터 유입되고 있는 산업예비군들이었다. 새롭게 공단이 조성되고 산업인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값싼 노동력으로서의 이농인구들이 이 시기부터 집중적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온 그들은 전문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 상품성으로부터 벗어나 있었으므로 서울에서 중심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현대성의 상징인 도시공간을 건설하는 한 축이면서, 이렇게 건설된 도시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도시 하층민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이 이뤄지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은 도시의 하층계급을 형성하면서 서울의 또 다른 형상으로 등장한다.
신동엽은 「鐘路五街」(『동서춘추』, 1967)에서 서울로 유입되고 있는 인구의 필연성과 그들 삶의 소외에 대하여 얘기한다. 통행금지 시간이 인접한 11시 30분, 동대문에 인접해 있는 종로오가에서 동대문의 위치를 묻는 소년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왔다. 새로 산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봐 맨발인 채로 고구마를 메고 있는 소년은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등졌거나, 먼저 고향을 등진 가족 혹은 친구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의 고향이 ‘해남’이든 또는 ‘보은’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타작마당에서도 빈 바람만이 휩쓸고 지나가는 판에 입에 풀칠이라도 할 요량으로 서울로 온 소년과 그들의 가족, 친구들은 서울의 개발현장으로 투입되고 있었다. 삼일빌딩과 청계천 고가도로로 상징되는 한국의 발전은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차별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토방 한 칸뿐이었다.
이처럼 서울에 인구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면서 주거문제는 기존의 주택지역까지도 슬럼화시키고 있었다. 해방 이후 서울을 잘 짜여진 도시계획 속에서 건설하기에는 너무 많은 인구의 유입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급속한 인구의 유입은 무허가 주택의 난립은 물론이고, 기존의 주택 지역까지도 슬럼화시키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부자들만의 동네가 생겨난다. 이른바 부자동네로 알려진 성북동의 개발이 그것이다. 현재는 서울에서 부촌이라고 불려지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1960년대만 해도 서울에서 부촌의 대명사는 성북동(정확하게는 성북 2동 3통과 6통)이었다. 한국에서 부촌이라는 것이 형성된 것은 6·25 전쟁 이후에 청와대를 중심으로 사직동 일대에 권력자들이 모여들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직동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주택을 개조·확장하는 방법으로 집의 규모를 크게 했기 때문에 그곳에 정주하고 있던 가난한 자들과도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여 부자들만이 살기 위하여 개발된 성북동은 1960년대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차별적인 공간이다.
물론 일제시대 말에 상허 이태준이 거처를 마련한 곳도, 만해 선생의 말년 거주공간이었던 심우장이 있었던 곳도 성북동이지만, 김광섭이 「성북동 비둘기」(『월간문학』, 1968)에서 자연 파괴의 상징으로 언급한 성북동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산자락의 곡선을 부수고 들어선 콘크리트 덩어리의 공간이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았던 이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새로운 인간들이 진입했는데, 이들은 해방이후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부자로 진입한 이들이었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에서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인간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다. 집터를 만들기 위하여 산을 깎아 내고, 길을 내고, 옹벽을 세우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북동에서 쫓겨난 힘없는 비둘기들의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도 자연의 일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선조들의 생각에 빗대어 본다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고 깨지면서 자연은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만이 남게 된다. 비둘기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끝남을 상징한다.
1960년대 집중적으로 성북동 일대가 부자들의 차별화된 주거공간으로 둥지를 틀면서 서울에서 빈부차이가 공간을 통해 구조화된다. 이전까지 부자와 서민들이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면 콘크리트 옹벽으로 성을 쌓고 다른 이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동네의 출현은 공간이 차별화의 상징으로 드러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북동 비둘기」는 서울이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의 차별화에서 더 나아가 서울 내에서도 세포분열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동엽의 「鐘路五街」에서의 소년이 새로운 ‘서울시민’이 되었음에도 이슬비를 맞으며 동대문 언저리를 서성거리다 정주하는 순간, 서울에서 부를 획득한 특권층들은 ‘서울특별시민’이 되어 성북동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는 다시 평창동, 구기동, 한남동, 강남으로 이어지며 공간의 차별화를 통한 빈부의 격차를 가시화하는 기제(機制)로 작동한다. 그리고 ‘성북동 개발에서 선구적(?)으로 보여 준 자연을 송두리째 도려내는 방식의 개발은 오늘날 개발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