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문화


장례문화 - 수의, 죽음을 맞이하는 의식

▲생냉이는 익냉이에 대비되는 말로 겉껍질을 손으로 제거해 만든다.
▲금소리 마을 주민들 이대마의 속껍질로 실을 뽑아 내고 있다.

“수의 한 벌, 동전 세 닢, 쌀 세 숟갈로 북망산천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
얽히고 얽힌 씨실과 날실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한 달전, 안동포 수의 무형문화재 故 배분령(99) 옹과의 취재 약속이 허망하게 깨져버렸다. 배분령 옹은 지난달 30일 백세장수 석 달을 남겨두고 북망산천으로 떠났다. 안타까운 마음에 배분령 옹의 며느리이자 안동포 무형문화재 후보자 우복인(74) 선생과의 만남을 결심했다.
토요일 새벽, 안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유난히 짙게 깔린 새벽안개가 침울해진 내 기분과 같았다. 점심때가 다 되어 안동에 도착해서도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안동시 축제에 초청되어 우복인 선생이 손수 수의 짓는 모습을 재현한다기에 그 곳을 직접 찾았다.
“故 배분령 옹은 손수 지은 안동포 수의를 입으셨습니까?”
기능보유자 우복인 선생을 만나 인사도 나누기 전에 대뜸 물었다.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시는 바람에 당신이 손수 지은 수의는 입지 못했어. 아흔아홉의 나이에 잔병하나 없으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버리셨지. 며느리도 자식인데 자식 된 도리로 내 손수 수의를 지어 가시는 길 편안히 모셔드렸지.”
갑작스런 질문에 조금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짧게 답한다.
“장례는 성대히 잘 치르셨는지요?”
내친김에 장례까지 물었다.
“그럼, 성대히 잘 치렀고 말고. 어머님 돌아가시고 가족들이야 허탈했지만 잔병치레 한 번 없이 너무 곱게 돌아가셔서, 어머님께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지. 임종하시기 몇 주전부터‘자다가 이 세상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장례를 성대히 잘 치렀다는 말을 듣고 허망한 기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 인간사 왕후장상의 화려한 인생이든, 서울역 노숙자 ‘쪽박인생’이든 어찌 죽음 앞에 허망하지 않을 소냐. 빈부귀천을 떠나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북망산천 애잔히 떠나갈 때 수의 한 벌 입고 노잣돈으로 동전 세 닢 그리고 가는 길 양식 쌀 세 숟가락 가지고 가는 것이 인생 아니더냐. 그래서 수의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또는 자식들이 공을 들여 썩은달, 윤달에 맞춰 짓는 것일 테다.
우리대학 강재?국어국문학전공) 교수는 그의 저서『기러기 아범의 두루마기』에서 수의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 했다.

수의의 흰색은 밝음과 영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혼불멸을 상징한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이 전제된 것으로 죽음에 관련된 흰 옷은 재탄생을 상징하는 주요한 통과제의적(通過祭儀的) 옷이다. 흰색의 수의를 입히거나 입음으로 해서 이 흰색이 저승길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고 생각했으며 좋은 곳에서의 재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예로부터 수의는 윤달에 지었다. 윤달은‘썩은달’이라고 하여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윤달에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를 하는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다.

“수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나는 우복인 선생과 마주앉아 차 한 잔을 나누며 수의의 의미를 재차 물었다.
“살아생전 부자였든 입에 풀칠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든 이 세상 떠날 때는 수의 한 벌 입고 가지 않겠소. 그러고 보면 수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고 가는 소중한 옷이야. 윤달에 수의를 해 입으면 죽어서 저승으로 떠나는 망인한테도 좋고 이승에 남은 자손도 번창한다는 말이 있지. 요즘은 초상이 나면 대부분 만들어진 수의를 사다가 사용하지만 올해처럼 윤달이면 밀려오는 수의 주문에 집안일도 제쳐 두고 수의 짓는 일에만 전념한다우.”
대단한 일 하신다고 하자 선생은 뭐 대단한 것 이냐며 휘휘 손사래부터 친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운 게 그것 뿐이라 그리 대단할 것 없단다. 그러자 옆에서 선생과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동네할머니가 왜 대단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한 소리 한다.

“삼베를 짜고 수의를 짓는 일은 기술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실을 꼬는 과정에서부터 일일이 손으로 하는데 여간 쉬운일이 아니지. 삼베 한올한올이 모두 우리의 땀과 정성이야.”
그랬다. 삼베 한 마, 수의 한 벌에 선생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우연찮게도 얽히고 얽힌 씨실과 날실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었다.
수의는 죽음과 관련된 의미를 넘어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날개옷이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을 테다.
우리문화에서 죽음은 결코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선조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자신의 묘 자리도 미리 알아보고 수의도 장만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조상들은 미리 죽음을 준비해왔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는 죽음을 기다려 왔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서 그곳은 가기 싫은 곳이 아닌, 가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요즘엔 수의를 직접 판매하지 않고 납품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모르지만 예전에는 수의를 사러오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도 많았다는 선생의 말에 나는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올케와 시누이가 시어머니 수의를 맞추러 함께 오면 대개 싸우고들 돌아가곤 했어. 시누이는 자기 부모니까 비싼 옷으로 맞추려 하고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싼 것으로 고르려고 하지. 잘은 모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어.”
“또 20년 전쯤에는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한 분이 찾아와서는 손수 수의를 맞추러 왔다고 하더라. 형편이 넉넉지 않은 큰 딸네 집에 얹혀 살며 근근히 파출부 일을 나서는데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홀로 여까지 찾아오신 게야. 헌데 가격을 묻고는 나 같은 사람 죽으면 찾아올 이도 없는데 큰 욕심 부려 여까지 온 것 같다며 다시 서울로 올라가시려 하는 거야. 내 아무리 돈 벌자고 하는 일이지만 딱한 사정 아는데 어찌 그냥 돌려보낼 수 있었겠어. 내 그날로 할머니가 준비해오신 쌈짓돈 조금 받고 안동포 반, 명주 반 해서 수의 한 벌 맞춰 드렸지. 그러고 얼마 안돼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 그 자식들이 찾아와서는 고맙다며 재차 인사를 하고 가더라고.

뭐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요즘 세상 좋아졌다고 해도 부모님께 좋은 수의 한 벌 장만해드리고 싶은데 가격이 부담스러운지 마을로 직접 찾아와 가격을 흥정하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이 있는 건 마찬가지야.”
선생은 안동포 수의에 얽힌 사연 하나하나 이야기하자면 밤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안동포는 영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안동포 수의는 삼 껍질 중에서도 속껍질만 가지고 짜는‘생냉이’로 지으며 화학처리로 생산된‘익냉이’로 지은 수의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안동 여인네들의 정숙하고 엄격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탄생한 안동포 수의는 천년을 간다고 했다. 이승에서 실컷 입지 못해 저승까지 입고 가는 것이 안동포일 게다.
삶이란 죽음과 떨어질 수 없는 종이의 양면과 같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네 삶의 시작과 더불어 죽음도 시작되고 그 그늘이 점점 짙어져 생이 끝나는 순간 완전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어둠의 세계로 가는 길목을 곱게 차려 입은 하얀 수의 한 벌로 비춰주니 저승길이 어찌 쓸쓸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홍혜승 기자>  lovelovehon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