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30공부를 게을리하지 마소서
학창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얘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당한 말씀인데도 들을 때마다 이를 귀담아 들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으리라. 하기야 이런 말을 항상 듣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필자도 여기에 속하는 사람의 하나였다. 그때는 그 말이 솔직히 듣기 싫었다. 『명심보감』에 보면 ‘지극히 즐거운 것은 책을 읽는 것이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듯이, 부모님과 선생님이 자식과 제자를 위하는 말씀이셨는데, 당시에는 그 말씀이 왜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후회막급이요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이이(李珥)가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 이라고 말한 것처럼, 공부는 누구나 하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공부는 시대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항상 해야 한다. 그 일례로 조선시대의 왕들도 공부를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경연(經筵)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연이란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신하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중에 불러 경서(經書)와 사서(史書) 등을 강론케 하는 것을 말한다. 경복궁 사정전에서 경연이 주로 열렸는데, 원래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을 해야 했지만, 보통은 하루에 한 번만 하거나 아니면 며칠에 한 번씩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역대 왕들 가운데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왕은 세종(世宗)과 정조(正祖)였다. 세종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날마다 경연을 열어 자신의 학문에 깊이를 더하고 신하들에게도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세종이 하루 동안에 열람한 책이 수십 권에 이르렀다고 『필원잡기』에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침 저녁 식사를 할 때에도 반드시 책을 좌우에 펼쳐놓고 눈으로 글을 읽었다고 한다. 이처럼 틈만 나면 책을 읽었던 세종은 송나라의 대문장가인 구양수와 소동파의 짧은 편지글을 뽑아 엮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이라는 책을 1,100번이나 읽었다고 신하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정조 또한 호학왕(好學王)으로 불릴 정도로 학문적 열성이 대단했던 왕이었다. 정조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고 아꼈는지는 방서록(訪書錄)을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방서록이란 구입해야 할 책의 해제 목록을 편집하여 서적 구입에 활용한 도서목록집이다. 정조가 학문의 중요성을 깊이 통찰한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부하지 않은 성군(聖君)은 없다. 하지만 조선조의 역대 왕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는 공부를 게을리한 왕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미암일기』에 있어 소개한다.
“강의가 끝나자 책을 덮고 내가 어전에 나아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엎드려 비망기(備忘記)를 보니, 만기(萬機 : 정무<政務>)의 여가에 하자니 학문이 전일(專一)하지 못하다는 말씀이 있사온데, 성념(聖念)이 이에 미치시니 감격함을 이길 길 없사옵니다. 무릇 정치와 학문은 이치는 동일하면서 일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하면서 정치를 하면 그 학문을 실험하는 바가 더욱 넓어지고, 정치를 하면서 학문을 하면 그 정치의 바탕이 되는 것이 더욱 깊어지옵니다. 그러므로 제왕의 경우에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학문을 하고, 다른 편으로는 정치를 하여 어느 한쪽을 폐해서도 안 되는 것이니, 처음에는 두 가지 일 같지만 마침내는 이치에 밝고 의리에 정(精)하여 일이 다 지극한 선(善)에 이르게 되면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이 서로 융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말에 의문 나는 데가 있으면 반드시 필기하라 하였고, 또 총명이 둔필(鈍筆)만 같지 못하다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궁중에서 공책 하나를 가져다가 학문의 의심나는 곳을 표기하여 살펴 물어 명백히 분변하는 바탕을 삼으시고, 또 하나의 공책에 정사와 언론으로 참고가 될만한 것을 표기하여 의논하고 사색하는 자료로 삼으시어, 날이 쌓이고 달이 겹치는 동안 잠시도 끊임이 없으면 의심나던 것이 밝아지고 상고하던 것이 터득될 것이오니, 이렇게 되오면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데 모두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말씀드리자면 학문의 길은 반드시 의심나는 곳을 찾아서 밝혀내야 하는 것이오니 이 점을 명심하시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소서’ 하였다.”
유희춘이 선조(宣祖)에게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아뢴 내용이다. 조선시대의 왕도 이러하였는데, 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더구나 요즈음은 중간고사 기간이다. 항상 공부를 해야 하겠지만, 시험기간이라 공부를 전보다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약용(丁若鏞)의 말처럼 ‘공부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시험기간이라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면 별 효과가 없다. 학생들이여! 이 점을 유념하고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란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