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부정

도덕적 불감증과 무리한 입시제도가 낳은 ‘수능 부정’

지난 17일 치러진 2005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휴대전화, 대리 시험 등 다양한 수법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조직적이고 대단위로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9일 광주지역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제보를 통해 첫 수사에 착수한 결과 한두 명이 저지르는 소단위의 부정행위가 아니라 1백20여명의 학생들이 가담한 조직적인 부정행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선수’, 문자를 중계하는 후배 ‘도우미’, 일반 수험생 ‘관객’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고, 이번 범죄를 위해 합숙을 통한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선수’가 어깨나 허벅지에 부착한 바(bar)형 휴대전화를 이용해 모스신호 방식으로 신호음을 ‘도우미’에게 보내면, 도우미가 정답을 종합해 ‘관객’과 ‘선수’에게 문자로 보내는 방법으로 부정을 저질렀다. 이는 어른들의 범죄보다 지능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더 큰 충격을 안겼다.
또한 지난 25일에는 3년 연속 수능 대리시험을 본 김모 씨가 적발됨에 따라 수능 관리와 감독에 대한 허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능부정이 점차 수면위로 드러남에 따라 경찰은 SKT, LGT, KTF 등 3개 이동통신사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분석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광주 이외의 서울, 전북, 충남 지역에서도 부정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런 부정행위가 비단 올해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공연히 지속돼온 대물림 범죄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부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학생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들 수 있다. 초·중·고교 시절 학교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강하게 처벌받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학교 관행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에게 ‘커닝’은 큰 잘못이 아니라는 사고를 심어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한 학생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의심이 가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의견이다.
두번째는 수능으로 모든 것이 결정지어지는 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르는 12년간의 지식을 하루 동안 평가해 대학을 간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부정을 막아야 할 교사나 학원 강사, 선배들이 “볼 수 있으면 능력껏 봐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런 환경 속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과관계인지도 모른다. 또한 수능 부정이 적발돼도 눈에 보이는 제도와 기술적인 면만을 보완하려는 정책으로 이런 상황을 더 악화되게 만든다. 지난 1993년 후기대 입시에서 이른바 ‘삐삐커닝’사태가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14명의 학생이 당시 유행하던 무선호출기를 이용해 답안을 송·수신 한 것이다. 당시에도 입시부정사건으로 인해 교육부나 정부 측에서 다양한 제도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그 결과는 10년 전이나 후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범정부, 민간차원의 첫 대책회의를 열고 부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각종 방안을 논의 했다. 전자검색대, 금속탐지기 설치 등 기술적인 수능 부정 방지방안과 감독관 증원 등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 됐다. 그러나 이렇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제도를 땜질해 나가기만 한다면 결국 더 발전된 지능적인 부정행위를 양산하는 결과만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번 수능부정은 ‘수능’하나로 전부가 평가되는 입시제도와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현 시대가 낳은 기형아다. 따라서 이런 점수 경쟁을 원천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 된다. 또 이런 입시경쟁의 원인이 되는 학벌 사회나 대학 서열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입시제도 개혁방안을 모색하고, 학생들에게 만연한 도덕적 불감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17일 수능시험에 앞서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휴대폰을 수거했다.
<허유나 기자>  yunari8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