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말을 아끼되 필요할 때는 하라

요즈음 정치판을 보면 막말들이 너무 난무하는 것 같다. 마치 누가 더 막말 잘하나를 시합하는 ‘막말 잘하기 경연대회’처럼 보인다. 하기야 정치판은 원래 말 많기로 소문났지만, 문제는 앞 뒤 생각없이 막말을 한다는데 있다. 정치인들이 이처럼 막가파식(?) 말만 앞세우니 국민들은 한심스럽고 불안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치를 잘해서 경제를 살리는데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이 어찌하여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국민들은 왜 이런 자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창피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말로는 그렇다고 하겠지만, 이런 자격미달의 인간들은 하루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정치판이 이렇다 보니 혹시 우리 사회도 정치판처럼 물드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특히 말만 앞세우는 풍조가 만연된다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진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그 사회는 발전도 미래도 없다. 재삼 강조하지만 말보다는 실행이 중요한 것이다. 자고로 말 많은 사람, 말을 앞세우는 사람치고 실속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맹자(孟子)』에 보면 ‘사람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는 이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총리, 대통령 등 이런 높은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다 재목, 그릇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중에는 자기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하면서 언행에 있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일례로 말을 할 때도 그렇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으니 도대체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맡은 직책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즉시 물러나라. 사람은 출처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하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디 단 하루를 하다가 그만두더라도 자리에 맞게 소신껏 하라. 그리고 제발 말조심 좀 하기 바란다. 일국의 총리가 ‘전두환·노태우는 용서할 수 있어도 조선·동아일보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을 하면 되겠는가? 아무리 조선·동아일보가 잘못했고 밉다고 하더라도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를 조선·동아에 비교할 수 있으며, 또 이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말꼬리를 잡거나 막말을 하는 여야 국회의원·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기 바란다.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망치게 하는 도끼다’라는 구절이 있다. 함부로 말하거나 생각없이 말을 하다가는 언젠가 큰 코 다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여 말을 할 때에는 신중히 생각한 후 필요한 말만 하자.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임금이 근심에 잠겨 거상(居喪)하는 3년 동안 말을 않는 것을 공자(孔子)는 옛날 임금의 떳떳한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또 때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는 의(議)가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송(宋)나라 영종(寧宗)이 효종(孝宗)의 상중(喪中)에 그 달이 넘자 곧 경연(經筵)을 열었습니다. 주자(朱子)도 역시 부지런히 경연에 참석하여 자주 유신(儒臣)을 불러서 치도(治道)를 갈고 닦도록 권면하고 가르쳤으니 대개 한 가지만 고집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당연히 말해서는 안될 경우에 말하는 것이 불가한 줄만 알고 당연히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이 불가한 줄은 알지 못합니다. 만약 임금이 한결같이 침묵만 지키고 말하지 않는다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정이 서로 통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쇠란(衰亂)과 위망(危亡)의 실마리가 되는 것으로 경계하지 아니할 수 없사옵니다.”

유희춘(柳希春)이 선조(宣祖)에게 거상기간 중이라도 침묵만 하지 말고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말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말은 많이 할수록 손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실수하는 때도 있다. 이로 인해 큰 낭패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또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경솔한 사람,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리고 말을 했으면 행동에 옮기고 책임을 져야 한다.
『논어(論語)』에 보면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는 구절과, ‘말할 때가 되어서 말하므로 남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잃을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실언이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말해야 할 때를 가려서 말을 하면 그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 모두 말을 아끼되, 말을 할 때에는 신중히 생각한 연후에 필요한 말만 하자. 특히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이 말을 가슴에 새겨두기 바란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연구교수
송재용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