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푸세(체 게바라)의 영혼을 일깨우다

“길 위에서 지낸 시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다”

호기심 많고 열정이 넘치는 그는 엉뚱한 생화학도 에르네스토 게바라 일명 푸세는 23살의 나이로 친구와 함께 무일푼에 낡은 모터싸이클 포데로사만 가지고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너,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의 생각만큼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게 진행되고 모터싸이클까지 망가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여행이 행복하다.

<중앙역>으로 유명한 월터 살레스 감독의 신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혁명가 이전의 ''체 게바라''를 아주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에르네스토(체 게바라)는 29살의 생화학도인 알베르토와 함께 ‘5개월 동안 라틴아메리카 횡단’이라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책에서만 본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낡고 기름 새는 1939년 노르튼 모델 포데로사(‘힘 있는 자’) 모터 사이클을 장비로 하여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시작으로 최종 목적지인 베네수엘라의 과히라 반도까지 8,000km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영화는 장엄한 라틴아메리카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동안 그들의 경로를 따라간다. 커브길을 돌며 맥없이 쓰러지고, 사막을 횡단하고, 눈밭을 헤매이며, 소떼에 부딪히기를 거듭하다 급기야 ‘힘있는 자’는 탈진하고 말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걷는다.

영화 속 에르네스토는 아직 우리가 아는 ‘체 게바라’가 아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에 박력있는 혁명가가 아니라 아직은 앳된 23살의 의학도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사수하는 로맨티스트이고, 모험을 좋아하는 도전가이며, 사람을 좋아하는 휴머니스트이다.

지나칠 정도로 정직하다는 것은 그의 무기였다. 페스체 박사의 습작을 “솔직히 진부합니다. 내용 구성도 엉성하고…….” 라고 평가한 장면에서는 그의 정직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나병촌 환자들을 돌보러 들어간 섬에서는 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너희’로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가 하면, 관습을 깨기 위해 장갑을 벗어던지고 그들과 피부를 맞대고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와 ‘너희’로 가르는 강물을 헤엄쳐 편견과 관습을 단숨에 건너버리는 모습은 바로 그가 앞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이끌 ‘Che’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멕시코부터 마젤란 해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단일 메스티소 민족이다. 그래서 편협한 지역주의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페루와 하나가 된 남미 대륙에 건배를 한다.”

사상이며 이념이란 단어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란 한없이 주관적일 때가 있어서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의 차이를 좁혀나가기는 쉽지 않다. 모든이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일수록 배척받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가로 너무도 유명한 ‘체 게바라’가 너무도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사상적이거나 이념적 접을을 하는 것이 아닌 화면 가득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과 함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이끌림으로 접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란 그 시대를 가장 잘 투영하는 시대의 모습일 것이다. 시대상의 반영이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안경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그 재연의 모습이 어떻게 모이냐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겠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가 아닌 이상 조금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형태의 사상이며 이념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을을 더 자극하는 드라마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또한 보는이의 마음을 동요하는 공감대는 너무 가볍지 않은 아우라를 남겨준다.

김명범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 4>

▲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