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미국의 ‘약 달러 정책’

한 동안 잠잠하던 환율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달러당 1,2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여 1,160원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요사이 환율의 하락은 원화가치의 상승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달러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것이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그 동안 유지해왔던 강한 달러 정책에서 약한 달러 정책으로 돌아섰다. 미국 재무장관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암묵적인 달러 약세 전환은 특히 아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무역적자의 주범인 아시아 각 국과의 교역을 유리하게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환율이 하락하면 우리나라 상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올라간다. 달러로 표시한 물건값이 비싸지므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다. 환율의 하락이 계속되어 기업마다 다른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수출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도 이어지게 된다. 반면 수입업체는 환율의 하락으로 이익을 보게된다. 달러로 표시한 물건을 수입해서 원화로 팔 때 원화표시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과거 100달러에 수입한 물건을 12만원에 팔았는데 환율의 하락 덕에 11만6천원에 팔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같은 이치로 국내의 소비자도 수입품을 살 때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환율의 변동은 수출을 하건 수입을 하건 기업에게 이익과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것을 환차익과 환차손이라고 하는데 환율의 변동에 따른 이익과 손실이라는 뜻이다. 만일 어느 기업이 기업활동의 결과 환차손과 환차익이 발행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 기업은 환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따라서 환위험에 노출된 기업은 당연히 환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작년을 기준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교적 우량기업 185개 중에서 58%정도인 107개 회사가 외화자산과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외화자산과 부채의 규모는 전체 자산과 부채 569조원 중에서 17%에 해당하는 97조원에 달한다. 이 경우 환율이 10% 변동하면 약 10조원의 환위험이 발생한다. 기업의 기본적인 활동과 상관없이 자산과 부채의 보유 형태에 따라서 엄청난 돈이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자산과 부채 97조원 중 63% 정도가 현물 자산과 부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은 외화 자산과 부채 중에서 2/3를 환율의 변동하면 위험에 천수답처럼 노출되는 형태로 가지고 있다. 연일 언론에는 환율의 변동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기사가 실리고 있고,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는 마당에 정작 이해당사자인 상당수의 기업은 무대책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환위험을 관리하는 기업의 파생상품거래 내용을 보면 선도환거래가 절반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통화옵션이다. 스왑거래나 통화선물거래는 미미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은 작년 약 1,500억원의 환차익을 기록한 반면, 약 7,000억원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원화와 달러 환율의 변동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환차손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수출해서 번 돈을 앉아서 까먹는 일은 없도록 환위험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 중에서 작년에 파생상품을 한 번이라도 거래한 기업은 30%에 불과하다. 또한 파생상품 거래실적이 있는 기업의 연평균 거래건수는 3.3건이고, 통화관련 파생상품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이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이유가 거의 횐위험의 관리와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기업의 60% 정도가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비하여 우리나라의 기업은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외환포지션을 보유한 기업의 58%가 환차손보다는 환손실을 기록하는 현실에 비추어 기업의 파생상품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 단순히 환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화가 40%까지도 평가절하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법학·졸> choica@kse.or.kr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