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힘 삶의 가치
금 선 란 / 한국동물보호협회 회장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가끔 어린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많이 기억하면서 추억에 젖거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의 경우는 돌아가고 싶은 학창 시절도 있어나 그 외 대부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많아 잊으려고 고개를 흔든다. 동물에 대한 쓰라린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포함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평등하게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어린시절부터 꿈꾸어왔다.
50년 전 우리나라는 참으로 가난하였다. 동물을 공터에서 때려 죽여 먹는 것도 많이 보았다. 매일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이 있어 열어보면 거지 손님들이었다. 그 당시 내가 아주 어린 탓이었는지 나는 거지들과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사람이면 모두 같이 집이 있고 먹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되는데…. 왜 집도 없고,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서 밥을 먹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있어야 되는지 의아심이 들었다. 특히 개의 생명을 죽여 먹는 것을 본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충격이었다.

내가 7살 아마 초등학교 가기 전의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집에는 큰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양구”라고 아버지가 지어 주셨고 양구에게 아주 자상하게 잘 돌보아 주어 개나 우리 형제(7남매)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당시 6.25 전쟁 때라 군인들의 군화소리에 놀라 짖었던 양구를 곧 우리 집에 들어 닥친 군인들이 데리고 나갔다. 나는 처음으로 양구가 정든 우리가족이라는 것을 절감하였고 정든 우리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처음으로 동물로 인하여 받은 큰 상처였다.
아버지는 나중에 또 새로 개를 키웠는데, 이름은 계속 양구라고 하였다. 추운 겨울, 아버지는 개가 춥지 않도록 청 마루 밑 한 쪽 공간을 완전히 막고, 양구가 충분히 눕고, 앉고 지낼 수 있는 크기만큼 만들고, 들락날락 할 수 있도록 입구 만 조금 뚫어 양구의 아담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따뜻한 짚단을 산더미처럼 많이 넣어 주어 양구가 누우면 짚 속에 파묻혀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 할 정도였다.
가족들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양구는 이름 그대로 아주 온순하여 고양이와 닭이 제 집에 들어와 신세를 져도 같이 쉬고, 자고 해도 조금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고 잘 지냈다.
고양이는 주로 방에서 지내지만 자주 밖으로 나가 놀다가 방으로 들어온다. 아버지는 고양이가 밖에서 놀고 방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네모진 문살 창호지 중 삼면만 칼로 도려내어 고양이가 마음대로 방으로 드나들게 하였다. 양순이가 밤에 뚫어진 창호지 문을 통하여 방에 들어와서는 내 다리에 고는 갸릉갸릉 소리를 내며 자곤 하였는데…. 나는 잠결에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촉감과 기분 좋을 때 내는 갸릉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이곤 하였지만, 솜털 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털 촉감이 무어라고 말 할 수 없이 좋아 다시 멋진 기분에 휩싸여 잠들곤 하였다.
부모님은 어려운 이웃과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나는 보았다. 어려운 이웃에 쌀과 음식을 갖다 주고, 아버지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이란 현재의 나보다 못하여 고통 받는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능력껏 도와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으로 마음속에 새기면서 자랐다. 불쌍한 사람도 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러나 동물은 욕심스런 인간에 의해 기본 삶도 빼앗기고 있다. 아무리 사람이 불쌍하여도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이 더 불쌍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말 할 수 있다는 그것 하나만이라도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상대방의 입장에 들어가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매 맞는 저 개가 나라면, 또는 물구덩이에 묶여 울고 있는 고양이가 나라면…. 그런 버릇은 어렵고 고통스런 생명을 쉽게 돕도록 하였다.
특히 말 못하는 동물이 나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받고, 행복해하며 나를 좋아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일이다. 인간에게서는 받아볼 수 없는 순수한 표현이었다. 사람들을 돕고 받은 대가는 쓰라린 배신과 상처뿐이다. 그렇더라도 도와주는 그 순간 마음이 편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나의 삶이며, 나의 삶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읽는 독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금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