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날 목우나경(木牛裸耕)하는 악습이 있다니

요즈음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수용과 어려운 경제난 때문인지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그때는 모두 힘들고 어려웠지만 십시일반(十匙一飯)하는 미풍(美風)이 있었는데, 요새는 불우 이웃돕기조차 예전보다 못하다고 하니 착잡하기만 하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생활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숙자·독거노인·고아·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인심과 세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의 좋은 풍습은 점차로 사라지고, 서양의 나쁜 풍습이 갈수록 만연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이러한 외래의 악습(惡習)은 조선시대에도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유희춘(柳希春)은 이를 『미암일기(眉巖日記)』에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멀고도 거친 종성(鍾城)에 더러운 풍속이 있어 백성들(종성부민<鍾城府民>)에게 고통만 주고 있다. 내가 이를 알고 놀랬으나, 그 곳 사람들은 편하게 여기고 있다. 옛날 태원(太原)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개자추(介子推)로 인해 2월이 되면 한 달동안 화식(火食)을 폐했는데, 초거(焦擧)가 태원 사람들을 효유하여 이를 고쳤다. 업중( 中)이 귀신을 좋아하여 매년 하백(河伯:수신<水神>)에게 처녀를 바쳤는데, 서문표(西門豹)가 그 풍습의 병폐를 혁파시켰다. 이 모두 어진 군자의 인의(仁義)의 마음 때문으로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왕도(王都:한양)와 거리가 너무 멀어 사리에 어두우며, 귀신에 미혹되어 괴이한 것을 숭상한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말도 안 되는 해로운 풍속이 있는데, 새 해가 되면 옷을 벗고 땅을 가는 흉내를 내는 일이다. 매년 입춘(立春)날 아침이면 종성부(鍾城府)의 관리와 선비들이 관문(官門) 앞 도로에 모두 나와 길 위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나무소를 몰아 밭 갈고 씨 뿌리고 곡식을 심고 걷는 시늉을 하게 함으로써 새해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곡식이 잘 익기를 기원한다. 이때 밭 갈고 씨 뿌리는 자는 혹한(酷寒)에 나체여야 하니 이 무슨 짓인가? 그 이유를 노인들에게 물으니 서로 말하기를 ‘장정이 추위를 참는 것은 한 해가 따뜻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무슨 아이들 같은 장난질인가? 추운 곳이라 손발이 트고 동상이 걸리기 일쑤인데, 하물며 옷을 모두 벗고 거리에 서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 사람으로서 이를 보고 어찌 놀라지 않으며 측은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리에게 물어 보면 백성들의 풍속이라 하고, 백성들에게 물어 보면 관(官)에서 시킨 일이라고 한다. 이는 애초부터 일을 모르는데서 시작이 되어 결국은 옛 풍속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버린 것이다. 6진(鎭)을 설치한 이래로 백여 년 동안 어질고 현명한 문관·무관이 백성의 부모가 되어왔는데도, 이를 태연하게 보기만 하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한 사람도 초거나 서문표처럼 용기있게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시작한 자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깨달았다면 고치기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나체로 하는 것을 금하면 그만이다.”
유희춘이 유배지 종성에서 ‘목우나경(木牛裸耕:옷을 벗고 나무소로 쟁기질 시늉을 하는 것)’을 목도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종성부민(鍾城府民)들의 무지와 관리들의 태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종성의 이러한 풍속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해마다 입춘날 아침이면 사람을 시켜 관문 앞길에서 나무소를 몰아 밭을 가는 일, 씨 뿌리는 일, 곡식을 심고 걷는 일 등의 농사짓는 일을 재현시키는데, 추운날 나무소를 모는 장정은 벌거숭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우나경’은 중요한 농작(農作)을 이루기 위하여 땅을 재생시키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의식이다. 이것은 봄의 부활과 생산을 확실하게 이루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주술의식으로, 중국의 ‘토우지제(土牛之制)’를 본뜬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유희춘이 추운날 옷을 벗고 나무소를 모는 행위는 몸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유희춘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얼마 있으면 입춘이다. 입춘 추위는 매서운 편이다. 더구나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춥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떨고 있는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