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돼지꿈’의 이중적 의미와 글루미 썬데이

돼지우리 같은 삶 속의 돼지꿈은 비극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한 강씨, 횡재후 우환이 연속된다

‘뷰리플 썬데이’는 ‘돼지꿈’의 실체이며
실제의 현실은 ‘글루미 썬데이’이다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이든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든 꿈이 있기에 현실에 대한 애착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재보다는 나은 어떤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내재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줄곧 꿈을 꾼다. 꿈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꿈이 되며, 현실적 실현성과는 상관없이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꿈이란 한낱 미몽에 불과한 것이며,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터를 떠나 대처로 나가는 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 현재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갖고 떠나거나, 아니면 억지로라도 희망을 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곳은 비극적 삶을 예정하고 있다.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 / 몸 팔러 간다 // 언제나 돌아오리란 /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 꽃피어 돌아오리란 /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 분꽃이 잊힐까 밑 냄새가 잊힐까 /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 / 몸 팔러 간다. 김지하, ‘서울길’전문

김지하가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서울로 향하는 길은 희망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싸여 있는 길이다. 그렇지만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강한 희망으로 전도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더욱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돼지꿈’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이 비약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이 내재해 있다. 비극적 상황을 초월하여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는 강한 희구는 꿈속의 돼지를 통하여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적 상황을 만들어 준다.

그야말로 돼지우리 같은 삶에서 ‘돼지꿈’을 꿈으로서보다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때 돼지꿈은 현실과 상상 속의 미래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이다. 비루한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돼지우리는 꿈속에서 현실과는 반대되는 의미의 공간이다. 돼지꿈을 꾸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서의 개연성은 불확실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둘러싼 ‘돼지꿈’의 아이러니는 유효하다.
황석영의 「돼지꿈」은 ‘돼지꿈’에 대한 우리의 반어적 상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개발의 열풍이 불고 있는 서울 변두리에서 사는 이들의 꿈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궁궐 같은(?) 집과 굶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곧 개발이 되어 강제 수용될 수밖에 없는 서울 외곽의 공장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꿈꾸는 것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한 강씨가 횡재를 한 날, 그의 집에는 우환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가출했던 그의 의붓딸 미순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로 돌아오고, 그의 의붓아들 근호는 공장에서 세손가락을 잃는다. 임신한 딸을 홀아비에게 억지 결혼시키는 강씨 처는 근호가 손가락을 잃고 받아온 위로금으로 살림이 모색되는 것에 일희일비한다. 한 때 한몫을 잡았다가 실패하여 포장마차를 하는 덕배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위세당당하게 나가다가 순경에 몇 일치 벌이를 뜯긴다. 머리를 쌍갈래로 땋아서 얌전하게 보이는 쌍갈래머리는 돈을 내지 않고 튀다가 덕배에게 잡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 하루 종일 걸어 라디오 행상을 하는 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가 철거된 것도 모르고 집으로 향한다. 개천에서 강씨가 횡재한 개를 잡아먹는 동네사람들은 멀지 않아 이곳을 떠나야 한다. 옆 동네는 철거되었고, 이들은 서울 변두리에서 서울이라는 경계선 너머로 축출당할 것이다. 평소보다 수입이 좋아 기뻐했던 상황에서 개 천렵은 돼지와는 상반되는 ‘개꿈’이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의 상황과 유사하지만, 희극적이지 않은 황석영의 ‘돼지꿈’은 이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 집안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강씨 동네의 삶은 비단 서울에 사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도시지역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경제지상주의 대한민국의 발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이다.
술 취한 근호가 반복적으로 외치는 ‘뷰리플 썬데이’는 근호가 꾸는 ‘돼지꿈’의 실체이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갈구일 뿐이며, 실제의 현실은 ‘글루미 썬데이(gloomy Sunday)’인 것이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1970년대 굴뚝산업의 중심지였던 구로공단은 현재 이른바 벤처밸리로 변신중이다.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