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행, 정착하지 못한 이들의 마지막 선택
학벌이 없어 대우받지 못한 그들은 미국행에 집착했다

그들이 최초로 눈뜬
세상의 신비는 미제와 달러였다

1970년대의 김포국제공항하면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이란 가요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연들이 메아리쳐도/지금은 말못하고 떠나가는 당신을/이제와서 뉘우쳐도 허전한 일인데/하늘 저멀리 떠나버린/당신을 못잊어 애태우며/쓸쓸한 발길 돌리면서/그리움 참을길 없어 나는 걸었네”라는 노랫말은 당시 김포공항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포국제공항은 세계로 열린 서울의 관문이 아니라 조국을 떠나는 이별의 종착지였다.
박완서의 단편 <이별의 김포공항>(1974)은 당시 김포공항이 만들어 놓은 이별의 엘레지를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다. 이 소설은 궁핍 때문에 해체되는 가족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50년 한국전쟁과 격동의 60년대를 거쳐 70년대가 되었어도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절대적인 궁핍은 박정희 정권의 쿠데타를 합리화시키는 조건이었다. 박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의 청사진을 펼치며 권위주의 통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독재 정권이 추진하던 근대화는 출발부터 부익부 빈익빈의 소외구조를 구축하는 계획이었다.
소녀의 삼촌들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의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양키들 특유의 제스처까지 몸에 익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미군 감축으로 미군 부대 내의 직장을 잃게 되고, 학벌이 없어서 한국기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영어를 잘한다는 우월감과 학벌이 없어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미국행에 집착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살려고 하는 소녀의 가족들과 삼촌들의 갈등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삼촌들에게 김포공항은 행복한 미래로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였다. “가난이 극심했던 어린시절, 그들의 동심이 최초로 눈뜬 이 세상의 신비와 경이가 바로 美製(미제)와 달라에의 경이였으니 그 본고장에의 동경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라는 작중 화자의 논평 또한 삼촌들의 미국행이 가지고 있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작중 화자의 말은 당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아메리칸 드림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박물관 구경을 간 노파가 “이까짓 데 뭬 볼 게 있겠다구. 괜히 돈만 없애지. 나야 미국가면 별의별 구경 다 할 걸”이라고 소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인들에게는 잘사는 외국이 아니라 하나의 유토피아로 인식되었다.
결국 삼촌들은 “조국을 쇠사슬을 자르는 죄수나 덫을 물어뜯는 짐승같이 난폭하게 필사적으로, 난파선을 버리는 쥐들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미국행을 서둘렀고” 마침내 서독과 브라질과 괌으로 떠나게 된다. 비록 미국행은 아니지만 이 땅을 떠난 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삼촌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허위의식일 뿐이었다. 소녀의 고모가 간호보조원이 되어 미국으로 떠날 때, 소녀의 어머니는 “어머닌 그저 미국 미국, 미국만 가면 큰 출세나 하는 건줄 아시지만 그게 아녜요. 고모가 뭐 벼슬이라도 해갖고 미국 가는 줄 아세요? 알고 보면 똥 치러 가는 거예요. 똥. 어머니도 속 좀 작작 차리세요”라고 노파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간호보조원이 ‘미국에선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 욕지기나게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풀이까지 하는 어머니의 악담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1970년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서독으로 가는 광부와 간호원,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떠나는 농업 이민자들이었다. 이 땅에 살다살다 못살게 된 사람들, 즉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마지막 선택이 바로 타국행이었다. 삼촌들이 출국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콤플렉스나 허황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사실은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국을 떠나서 타국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를 희망했다. 미국에 있는 딸에게 몸을 의탁하러 떠나는 노파가 비행기를 함께 탄 젊은이들을 보면서 “하긴 저들도 뿌리 뽑혔달 수 있겠지. 그러나 저들은 묘목이다. 어디에고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묘목이다. 그러나 난 틀렸어. 난 죽은 목숨이야”라고 탄식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 앞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야 했다. 노파는 이륙하는 비행기 속에서 “아들들이 이를 갈며 싫어했고 진저리를 치며 놓여나기를 갈망했던 이 땅의 모든 구질구질한 것까지 자기가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생각하면서 서럽게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1970년대 김포국제공항은 구조적 모순에 의해서 떠밀리는 사람들의 한 많은 이별공간이었다.
장두식 <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