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최소약속

약속을 지키는 관객이 만드는 이상적인 연극 문화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이 국가적 행사로 상연되어 일반 시민이 관객으로 참가하였지만, 근대극 이전의 유럽 연극은 주로 궁정극장에서 상연되고 관객의 자리는 상류계급이 독점하였다. 또 퓨리턴(Puritan:청교도) 정신의 지배하에 있던 영국에서는 극장이 부도덕한 장소로 지목되는 등 시대와 나라에 따라 제각기 도덕적 ·사상적 ·정치적 조건들의 제약을 받고, 일반 서민 누구나가 인간 본래의 즐거움인 연극을 자유롭게 즐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사회의 분화가 진전되고 관객의 질도 다양화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작품에 대하여 관객이 상반되는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1830년 V.위고의 《에르나니》가 야기시킨 프랑스 고전파와 낭만파 사이의 ‘에르나니사건’이나 J.싱의 《평판 좋은 사나이》(1907)가 더블린이나 미국 각지에서 받은 상연 방해 등이 그 예이다. 관객의 시대적 변형이 있다는 건, 관객의 의미 역시 유동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누구나 볼 수 없었던 고대 시대가 아닌 이상 이젠 누구나 공연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연 기획사는 코어마케팅 혹은 귀족마케팅이라고 해서 타켓을 정하고 나름의 신분을 나누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러한 공연의 수보다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문화예술과 여가활동 시간이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극에서는 희곡 ·배우 ·극장이 연극 성립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창조에 적극 협력하여 연극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이며 동시에 감상자이다. 구경꾼이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방관자까지 포함한 넓은 뜻에서의 관객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관객도 포함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연극의 순수한 관객과 구별된다. 무대에서 전개되는 세계와 관객의 내적 세계가 공통의 자리를 갖고, 무대와 관객 사이에 심적 교류가 이루어질 때 연극은 성립된다.

그러므로 무대가 관객의 기대에 어긋날 경우, 관객이 소동을 일으켜 상연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나 텔레비전의 관객 ·시청자처럼 이미 완성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감상자와 연극의 관객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관객이란 시청자보다 오히려 더욱더 능동적 형태의 소비자를 혹은 구매자를 의미할 것이다. 이렇게 주체적인 사람에게 유감을 묻는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의아한 혹은 주객이 전도된 의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공연의 순수성이란 불가능 한 단어조합일 수 있겠다.(물론 무료공연은 제외하고 말이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것으로 이윤이 창출되는 이상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순수성을 묻는다는 것은 조금 오류가 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되다''''''''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공연을 즐기는 것은 순수하게 관객과 공연을 이끄는 아티스트의 호흡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공연을 하는 주체도 부수적인 관객중심의 편의 도모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지금 거론하고자 하는 의미는 ‘공연되다’를 이야기 하고 싶다. 티켓의 뒷면을 보면 몇 가지 규제초치가 있다. 그것은 공연을 보는 관객의 약속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최소한의 행동이며 최대의 공연 매너인 것이다. 여러 공연장에서 관객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살피는 나로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공연을 욕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을 보면 어이가 없다. 촬영을 하는 관객에게 촬영금지를 요구한다고 치자, 그럼 관객은 이렇게 말을 한다. “앞에 사람도 찍는데 왜 나한테만 그럽니까?” 혹은 “당신들이 통제를 잘 하란 말이야”라는 몰상식한 소리를 듣게 되는게 대부분이다. 우리나라공연장 특성상 오천 석이 넘는 공연전용 홀이 없다는 것과 대게 진행요원 한 사람당 수백의 관객을 상대해야 하는 시스템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할 수 없는 아타까움이 있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준비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그것은 아티스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관객을 배려하고 관객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많은 준비들이 있다. 진행요원, 매표소의 확대, 주차시설, 명판제작 등 수 없이 많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누누이 강조하지만 관객의 최소약속은 지켜진 후에 관객의 소리를 내는 매너를 가지시길 바란다.
김명범<대중문화 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5학기>

▲ 관객의 소리는 관객이 지켜야 할 약속이 지켜진 후에 내야할 것이다.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