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한자락에 담긴 이룰 수 없는 ‘서울의 꿈’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기대감과 희망은 과도한 몽상으로 이어졌다

“종이 울리고 꽃이 피는 낙원 서울의 현실은
비내리고 안개낀 익명성의 공간이었다”

노래는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성을 어떤 영역보다도 잘 보여주고 있는 영역이다. 특히 사실성보다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희구를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대중가요는 비판적인 의식보다는 대중들에게 반복적으로 각인됨으로써 호소력을 얻는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가요의 한 자락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삶과 동일화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달은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대중가요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삶의 리듬은 대중가요의 리듬과 함께 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국근대화’라는 구호 아래 국민총동원이 이뤄지고 있던 1970년대 대중가요에서 수도 서울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경제개발 정책의 영향으로 서울은 더욱 과밀화된다. ‘무조건 서울 하늘이 보고 싶어서’ 올라 온 양병집의 ‘서울 하늘’에 등장하는 화자의 마음은 ‘돈 좀 벌고 싶고, 출세 좀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봤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낙향하려 한다. 그는 ‘화려하지만 머리 복잡한’ 서울의 외양에 염증을 느끼고 그곳을 벗어난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고향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품고 있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서울이 먹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상징화되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노래에서 보여지듯이 ‘서울은 돈 벌러 가는 곳(‘식구 생각’)’이자, ‘상급학교로 진학(식구 생각)’하기 위해 가는 대한민국의 특화된 공간이다.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은 기대감과 희망은 과도한 몽상으로 이어진다.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서 서울의 꿈은 관제가요가 아님에도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과대망상증으로 표상화된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 새들의 노래 / 웃는 그 얼굴’은 개발만이 지상명제인 국가의 수도 이미지에 어울리는 말일까? 자연과 함께 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의식을 갖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현실적 반사는 그야말로 공허하다.

그럼에도 명료한 노랫말과 4음보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대중들에게 쉽게 호소할 수 있는 이 노래야말로, 현실과 어긋나지만 대중들의 꿈을 반영한다. 세상은 모두 잘 될 것이라는……. 또한 ‘서울의 찬가’에서 나타나는 시간 의식은 순환적이다. ‘봄이 또 오고 / 여름이 가고 // 낙엽은 지고 / 눈보라 쳐도’ 변하지 않을 의식에 대한 강조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현실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낙원적인 공간으로서의 ‘서울’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서울의 꿈을 통하여 적나라한 현실을 도치하고자 함이다. 앞만을 향해 가고 있는 공간에서 계절적인 순환과 시련은 있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고, 설사 변한다 해도 다시 회귀할 수 있다는 염원은 격변하는 사회체제에서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 서울에서 살렵니다’는 결구에서 보여지듯이 ‘서울의 찬가’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중심인 서울의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와 안정을 바라는 대중들의 이중적인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혜은이의 ‘제3한강교’에 투영되어 있는 욕망은 보다 직설적이다.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밑을 흐르는 강물은 당신과 나의 꿈을 나르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서울 생활의 꿈은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 이 밤을 맴돌다가’처럼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으며, 유토피아적 공간인 ‘행복어린 거리’로 비약한다. 강물은 제3한강교를 흘러 바다로 가서 돌아올 수 없듯이, 우리의 꿈은 ‘어제 다시 만나서 / 다짐을 하고 // 우리들은 맹세를 / 하였습니다’라는 반복되는 맹세처럼 반복적인 허사(虛辭)가 된다.
어떤 경로를 거쳐서 들어 왔던지 서울에 진입한 이상 사람들은 서울을 쉽게 떠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우수에 젖어 있다. 요절한 가수 배호의 노래에서 ‘비’와 ‘안개’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회색 빛 도시와 우수(憂愁)어린 감정이 적절하게 결합되기 때문이다. ‘비내리는 명동’,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소재들은 익명성의 공간인 거대도시 서울에서 연(緣)이 끊어진 이들의 일상이다. 상실의 공간이지만 또 다른 행로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징적 공간인 ‘울고 가고, 돌아 가는 삼각지’를 찾는 ‘외로운 사나이’는 고향을 떠나 연고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대신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의 생활이 고통스러울수록 떠나온 고향은 잃어버린 꿈을 일깨우는 공간이 된다. 나훈아의 ‘머나 먼 고향’처럼 ‘천리 타향 낯선 거리’에서 헤매고 있지만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갈 수 있는 것은 ‘타향 / 고향 = 서울 / 유토피아’라는 의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고향은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공간일 뿐이다. 서울과 대비되지만, 그곳 또한 서울로 상징되는 근대화의 세례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남진의 ‘임과 함께’에서처럼 ‘그림 같은 집이 있는 저 푸른 초원’이 등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도 유토피아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청계천 레코드 샵은 그 시대 대중가요의 흐름을 반영했다.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