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무작정 상경했지만…
「과외수업」의 ‘나’는 나보다 먼저 상경한 양아치에게 훈계를 듣는다

서울에 발을 디딘 인구와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는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다
건강한 몸뚱이 뿐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이 새꺄 ! 왜 안 내려 ?”
물론 내 꼬라지로 보아 무작정 상경한 놈임에 틀림없을 것으로 간주했던 강생원이 의자 밑을 기웃거리던 쌍통을 기웃하니 쳐들고 나를 보며 반시비조로 나왔습니다. 그제사 내 정신이 후딱 들었습니다.
“ 임마, 부모 속 썩이들 말고 낮차로 내려가. 짜아식, 남이 서울 서울 하니까······.”(김주영, 「과외수업」, 『월간중앙』, 1974)
박정희식 근대화 정책의 영향으로 모던의 세례가 도시를 중심으로 농촌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을 때 사람들은 한국식 근대화의 표상 서울로 모여 든다. 이는 ‘무작정 상경’이라는, 다소의 사회적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는 용어로 표상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력의 이동을 동반하는 자본주의화의 자연스러운 행로이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서울로의 이동은 그만큼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시가 표상하는 물상이 모던적 삶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리라. 먼저 농촌을 탈출했던 선배, 친구들의 무용담이 공갈인지 알면서도 그들의 손에 이끌려 구로공단, 청계천에서 수출역군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받으며 ‘시다바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거개 농촌에서 탈출한 이들이다.
그렇지만 서울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면 농촌에서의 삶보다 나으리라는 기대감은 장시간의 노동에도 향상되지 않는 월급봉투를 보면서 곧 실망으로 전환한다. 그럼에도 농촌을 강타한 TV화면의 환상과 먼저 상경했던 일시 귀경했던 이들의 허풍은 도시로 향하는 인구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한다. ‘서울로 ! 서울로 !’라는 공통목표의 정서적 일체감 속에서 하나의 무리로 통합되는 이들은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서울로 향하는 가치의 종착역에 도착하는 순간 깨진다.

「과외수업」의 무작정 상경을 도모한 ‘나’는 종착역에 도착한 객차의 바닥을 뒤져 하루를 연명하는 양아치로부터 훈계를 듣는다. 그는 ‘나’보다 먼저 상경했다는 이유로 서울이라는 공간의 진실을 비아냥거리며 알려준다. 「과외수업」의 ‘강생원’은 서울에서의 삶의 실체를 몸으로 체험했기에 ‘나’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나 고향을 등질 때는 이미 고생을 각오한 것이 아니었던가 ? 지체 높은 이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이런 말에 주눅들 것 같았으면 낯선 타향에 발을 디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농촌생활에서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서울에서도 그의 성실성을 인정받는다. 그렇지만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인식 속에서 타향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8백만 명이라는 거대한 인구들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 서울에 모여든 사람들의 삶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 공통의 목표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지고지순의 가치일 것이다. 이들 중에는 「과외수업」의 ‘나’처럼 거창하지 않은 목표를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함으로써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도 있지만, 도시적 삶의 생리를 이용하는 김주영의 「도깨비들의 잔칫날」(『월간중앙』, 1975)의 ‘한명수’처럼 기생적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불나비들의 도시적 삶에서 한 몫을 잡으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낯선 삶의 공간에서도 농촌 생활에서의 근면과 뚝심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자전적 성공의 일대기는 후대에 길이길이 칭송될 것이다.
성공의 신화에 도취한 상태에서 보면, 성공의 이면에 존재하는 허위성보다는 표면에 드러나는 외피만을 보게 된다.「도깨비들의 잔칫날」의 ‘한명수’는 서울에서 성공한 이들의 허위 의식을 이용하는 ‘케이크 부대’의 일원이다. 실속보다는 허명(虛名)에 사로잡혀 있는 서울 사람들의 의식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잔치의 실속을 챙기는 ‘한명수’를 과연 지배세력에 기생하는 ‘좀비’라고만 평가할 수 있을까? 신문의 문예면을 꼼꼼하게 살펴 미술전, 사진전, 문화행사 등에 깔끔하게 차려입고 그 분야의 전문가인 척하며 케이크와 맥주를 공짜로 즐기는 ‘한명수’는 서울의 허울을 이용하는 부류이다. 그의 허물은 이런 문화 행사에 끼어들 수 있는 자격이 없으면서도 주워들은 풍월을 읊으며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행위는 문화를 상위계급의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이들의 틈을 파고드는 행위이다. 그러나 비위가 강한 그도 타락한 재벌들과는 달리 건전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소기업 사장인 김일진 부부의 초대로 그의 집에 방문하면서 그를 가장하고 있는 형식을 걷어낸다. 무식한 경영자들에 비하여 더 교묘한 이윤 창출의 방안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원활했던 배설은 시원하게 이뤄지지 못한다. 도시의 허울 좋은 찌꺼기들을 흡수하면서 시원한 배설욕을 느꼈던 그의 생리는 점점 속물이 되어 가는 그들 앞에서 시원스레 뚫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도, 체면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서울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하는 있는 부류들이다.
그럼에도 ‘조국근대화’라는 구호가 지배하고 있는 1970년대 중반의 서울은 농촌으로부터 이탈한 인구들이 유입하면서 다양한 부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었다. 이미 서울에 발을 디딘 인구와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는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울로 입성할 때 갖고온 것은 건강한 몸뚱이뿐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1970년대 인천에서 서울로 열차통학 하는 학생들.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