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인가, 가장인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반영하는 호주제가 1960년에 시행됐다. 호주제는 국민을 가족단위로 묶어 하나의 공적부에 기록한 것으로 과거에는 가계승계라는 의미가 있었으나 현대 사회로 오면서 여성의 권위가 향상되고 가부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호주제를 찬성하는 입장은 호주제는 가계 계승제도이며 보존돼야 할 전통문화라고 주장한다. 또 폐지할 경우 어른공경사상이 사라지고 가족이 해체된다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은 호주제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제도로 남자만이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제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이혼과 입양 가정이었다. 아버지와 성이 다르고 입양자라는 이유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호주제 폐지의 주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남녀평등을 법으로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家)를 편제한 호주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고 지난 3월 2일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호주제 폐지가 확실시 됐지만 호주제 폐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호주제를 대신할 제도에 대한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호주제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 ‘1인 1적제’를 제시했다. 1인 1적제는 호주가 중심인 현행과 달리 ‘나’를 중심으로 가족이 편성되며 개인의 신분관계 변동은 신분등록부에 기록하게 된다. 또 1인 1적제 시행으로 개인정보 보호도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상변화 내용만 추가될 뿐 다른 가족의 변동 사항은 기록되지 않아 혼인 이력이나 입양 이력은 따로 증명서를 떼야 한다. 하지만 1인 1적제는 가족 개개인을 따로 등재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며 A와 B의 관계를 알기 위해 여러 개의 공적부를 필요로 하는 불편함이 있고 부모의 사망 여부를 표시하는 경우 결손 가정이 공시되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호주제 폐지에 따른 대체 법안의 본래 취지를 반영하고 행정상의 문제를 보완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처럼 대체 방안이 구체화되어 가고 있고 올해 상반기까지 대체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가족 해체 우려에 따른 국민 정서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일부는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면서도 한편으로 전통 질서의 붕괴에 대해 걱정한다. 지난 11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면 성씨의 정통성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개정 민법에 대한 헌법 소원이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호주제 폐지의 필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의식을 변화시키는 공익광고를 만드는 등 ‘호주제 폐지=가족의 해체’가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 또 대체 법안에서도 원칙적으로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며 예외적인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돼 있음을 알리고 이번 개정으로 이혼, 입양 가정이 겪어야했던 사회의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등 장점을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 가족의 형태는 이미 변화되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가부장 제도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가족 구성원의 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이 됐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되지는 않았다. 호주제도 마찬가지다. 호주제 폐지는 이러한 가족 내부와 사회의 변화에 맞는 법의 변화인 것이다.

▲ 호주제 시행 후 가정법 개정운동을 시작으로 폐지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황영아 기자>  baby22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