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자중(自重)하시기 바라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요새 신문이나 TV를 보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 중 일부 인사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을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해야 할 텐데 생각 없이 불쑥 말을 내뱉은 다음, 본의가 아니었느니 기자들이 왜곡해서 기사화 했다느니 하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결국은 유감 표명이나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수사적인 말로 끝내 버리기 일쑤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고 경솔한 언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자기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국민들이 강제(?)로라도 물러나게 해야만 한다. 어찌 이같은 자들에게 국가대사(國家大事)를 맡길 수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보면 ‘왕은 크게 공경하여 빗나간 말을 하지 아니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왕은 그 언행을 삼가하여 조심하고 공경하며, 사려 깊어서 도리에 벗어난 말을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지도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깊이 명심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아침에 승정원(承政院)에서 계(啓)하기를 ‘전 이조판서 정유길(鄭惟吉)은 청의(淸議)에 용납되지 못한 지가 오래여서 옥당(玉堂)의 차자와 대간(臺諫)의 논박은 진실로 일시의 공론에 의하여 격발된 것이지 어찌 그 사이에 털끝만치라도 사의(私意)가 있겠습니까? 어제 내리신 비답(批答)에 듣기 황송한 분부가 많으시므로 신 등의 마음이 대단히 편치 못하고 거북한 바가 있어 감히 주달하옵니다’ 하니, 전교가 내리기를 ‘알았다’ 하였다. 어제 대간이 정유길을 두고 논계(論啓)하였는데, 주상 전하께서 비답을 내리기를 ‘언사를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애써 남의 과실만 찾아내려드니 참으로 나는 그 심리를 알지 못하겠다’ 하셨다. 그래서 대사헌 박소립(朴素立)·대사간 윤의중(尹毅中) 등이 피혐(被嫌) 하고 모두 변명을 하였다.… 내가 또 계하였다.

‘지난날에 대간이 정유길을 논계할 때, 전하께서 내리신 비답의 사연이 너무도 과격한 바 있었으니, 이는 대개 마음을 수양한 공력이 지극하지 못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옥당에서 즉시 차자를 올리려고 했으나, 신 등은 주상께서도 반드시 회오(悔悟)하시리라 믿고 중지하였습니다. 원컨대 자중하시기 바라옵니다’ 하였다.”
유희춘이 정사(政事)의 처리를 과격하게 하려는 선조(宣祖)에게 자중하기를 간곡하게 아뢴 내용이다. 『예기(禮記)』에 ‘왕의 말은 가는 실과 같으나 나오면 굵은 실과 같이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왕의 말은 나올 때에는 명주 올 같이 매우 가늘지만, 일단 나오면 윤(綸), 곧 굵은 실처럼 되어서 나온 구멍으로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왕이 하는 말은 다시 고쳐 바꿀 수 없으므로 일단 말을 했으면 거두어 들일 수 없는 것이다. 윤언여한(綸言如汗)이란 말은 여기서 나온 말로, 왕의 말은 땀이 한 번 흘러나오면 다시 그 땀구멍으로는 도로 담을 수 없음에 비유하여 거두어들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위정자나 정치지도자가 말을 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작년 6월에 김용옥씨가 MBC 도올 특강 마지막회 방송분을 녹화하는 자리에서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력에게 세 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은 적이 있었다. 그는 먼저 말을 적게 할 것을 조언했다. 김용옥씨는 이 말을 하면서 ‘말로써 역사를 만들 필요는 없으며 행동으로만 자신의 바른 가치관을 보여 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두 번째 조언은 ‘열린 마음으로 다문(多問)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생각을 갖고 (일을)처리하려 하지 말고 계속 물어라’고 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지만,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브리핑만으로는 세상을 알 수 없다. 정말 묻기를 좋아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달이 뜨면 별은 사라진다’며 ‘작은 것에 신경쓰지 말고 큰 것만 다스려라. 현 시기는 개벽의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할 시기이므로 큰 것만 생각하고, 큰 패러다임을 만들어서 역사의 큰 틀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필자의 김용옥씨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옳은 말이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한 김용옥씨에게 적지 않게 놀랐다. 정치지도자나 차기 대권 후보들은 김용옥씨의 조언을 가슴에 새겨두기 바란다.
아무튼 우리는 항상 자중하면서 언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실수도 안하고 자기 이름 값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