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과 시름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곳
참새 대가리도 타고 꼼장어도 지글대고 꼬치 국물도 설설끓는 곳

“권태와 체념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 바로 포장마차였다”

1970년대는 닫힌 시대였다. 근대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산업화 초기단계에는 권위주의 권력구조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의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박정희 정권 아래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에는 대못이 하나씩 박힌다. 물질적 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 위주정책은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전도시켜 정신적 공황상태를 불러왔고, 급속한 성장과정 속에서 성장의 결실을 특정계층이 챙겨가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켰다. 당연히 지식인들의 비판과 민중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저항운동에 대하여 개발독재정권은 야만적인 폭력통치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신상웅의 단편소설 <돌아온 우리의 친구>(문학사상, 1978.5.)에서 “한 줌의 재를 위한 꽃다발로는 그건 너무나 흐드러진 풍요였다. 너무나……”라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1970년대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나 인간의 정신도 존엄성도 모두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되었다.
닫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두 개의 꿈이 자라난다. 탈출의 꿈과 변혁의 꿈. 탈출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변혁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실현될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변혁운동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적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그들에게 열려진 출구는 없었다. 달아나고 싶은데 달아날 수 없는 꽉 닫힌 현실. <돌아온 우리의 친구>에서 친구는 김포국제공항을 통해서 중동으로 날아갔으나 결국은 한줌의 재로 귀국을 하게 된다. 김포국제공항조차 탈출구가 될 수 없었다.
탈출구 없이 방황하는 수도 서울의 서민들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서울의 으슥한 뒷골목을 점거하고 있는 포장마차. 얼마나 감동적인 이름인가? 포장마차 하면 미국의 서부개척시대가 떠오르고 태평양 연안으로 달려가는 카우보이들이 연상된다. 그 시대 포장마차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서울의 포장마차는 바퀴는 있으나 처음부터 이동권이 제한된 이름뿐인 포장마차였다. 공간적 이동을 못하는 포장마차. 서울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포장마차. 후천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포장마차는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포장마차에서 저녁마다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수도서울의 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자신들의 꿈들을 털어놓았다.

신상웅의 <아침부터 축배를>(창작과 비평,1979.봄)은 포장마차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세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대학시절 철학도였던 윤형태는 살기 위해서 관공서에 민원서류 처리를 대행해주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가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직장의 사무장, 준배, 미스노, 그리고 출장소의 여직원들이다. 그는 살기 위해 하기 싫은 품팔이를 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 권태와 피곤을 느끼고 있다. 대학시절 은사 김진기 교수와 나누는 다음과 같은 대화 속에서 서울에서 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을 읽을 수 있다. “도시는 사람을 밥 즉, 먹는 것의 노예로 만들거나 아니면 사악하게 만드는 두 가지 나쁜 기능밖에 못하지.”/“전 전자입니다.”/“우린 식당에서 만났으니 두 사람 다 전자지.”/“전 정말 전잡니다.” 이러한 권태와 체념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 바로 포장마차였다. 포장마차에서 그들은 스스럼없이 사적인 내밀한 공간을 까발리고 치부들을 드러내며 낄낄거린다. 또한 “우리 회사가 재벌이 안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가족적 분위기로 일하라고 하셨잖아. 잠자코 뛰어. 뛰면 여기서 사장 전무 상무 다 나올 테니.”라는 허황된 꿈도 교환한다. 이러한 속악한 세태의 배후에는 소외받는 자들의 진한 연대감이 깔려있다.
신상웅의 <세번째 겨울>(<문예중앙> 1977.겨울)에서도 포장마차가 서사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방금 출감한 이용민은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최명운, 홍시구, 미쓰김 일행을 만난다. 그들은 생면부지의 관계지만 포장마차라는 공간 속에서 저절로 서로의 삶이 얽히게 된다. 이용민은 교통사고를 낸 사장 대신 물질적 대가를 보장받고 감옥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아들의 구속 때문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 그는 현재 약속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모친살해의 죄의식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포장마차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서서히 자신의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최명운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남성불구가 된 인물이고, 홍시구는 장래가 없는 기업에 안주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포장마차 안의 인물들은 소외받는 자의 슬픔을 공감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의기를 꺾지 마라. 체념하지 말란 말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진범은 모두 밖에 있다. 밖에서 활개치고 다닌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안에서 기를 것은 용기뿐이다”라는 감방장 유씨의 말은 이용민이 어려운 결정을 하는데 힘을 준다. 결국 이용민은 경찰서로 찾아가 자수를 한다. 이 소설 텍스트는 물질보다는 정신의 우위성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상웅이 형상화하고 있는 1970년대 포장마차는 서민들의 애환과 꿈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꿈을 꾸지 못하고 가장 개인적 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포장마차. “꼬치국물도 설설 끓고 참새대가리도 탁타닥 타고 꼼장어도 지글지글 구어지고 있는” 포장마차에서 수도서울의 서민들은 자신들의 슬픔과 꿈을 주고 받았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서울의 으슥한 뒷골목 그곳에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모여드는 포장마차.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