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말고 덜도말고 이날만 같아라
원앙이 노니는 금침 속 운우(雲雨)의 정도 깊어가네

“예로부터 처가는
예단으로 보고,
시댁은 함으로 평한다”
“포근한 이불처럼 며느리를
따뜻하게 감싸달라는
친정어머니 마음이 담겨있다”

희미한 열기의 초가 붉은 입김을 태우는 밤. 녹아내리는 촛농보다 더 달아오른 새 색시의 볼은 자연히 발그레한 연지곤지가 그려집니다. 이 초는 붉은 색 바탕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몸을 장식한 화촉(華燭)입니다. 빛나는 화촉의 화려함 만큼이나 아름다운 활옷을 입은 새 색시는 꼭 선녀처럼 곱습니다. 긴 활옷 자락으로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떨리는 첫날밤. 수줍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내를 바라봅니다.
푸른 사모관대를 한 저분이 나의 지아비입니다. 늠름한 아귀로 술잔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춤을 추는 화촉을 넘어 아른거립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원앙침(鴛鴦枕)에 머리를 누이고 서늘한 원앙 금(鴛鴦衾)을 끌어올립니다.
첫날밤 초를 켜는 것은 ‘화촉을 밝힌다’라고 말한다. 초를 꽂는 촛대는 남자를, 초는 여자를 상징해 이 것은 혼인의 경사스러움과 성결합(性結合)을 뜻한다. 또한 타오르는 촛불의 흰빛은 신랑 신부의 순결한 마음으로 비유한다. 이 촛불은 입으로 불어 끄지 않고 손바람이나 옷자락·이부자락으로 껐는데, 입으로 불어 초를 끄면 복이 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원앙금침(鴛鴦衾枕)이다. 원앙금침은 신랑 신부가 함께 덮는 원앙이 새겨진 이불인 원앙금(鴛鴦衾)과 베개인 원앙침(鴛鴦枕)을 함께 이른다.
제주도 무속신화 세경본풀이에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문도령과 자청비는 첫날밤을 지낸다. 이때, “한 이불, 한 요에 잣베개 같이 베고 연 삼 년 속여 오던 사랑을 풀었다”라고 하여 편안하고 행복한 밤을 표현했다. 베개는 휴식을 뜻하지만, 첫날밤의 베개는 남녀의 합금(合衾)에 의한 합환(合歡)을 상징한다. 가장 편안한 쉼인 잠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건강과도 직결되어있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 신을 두고 살았던 옛 사람들은 베개나 이불에도 의미와 기복(祇福)의 도구로 사용했다. 베갯모와 이불에 특별한 무늬의 수를 새겨 놓아 잠자는 동안 길한 꿈을 꾸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했다. 특히 신혼부부의 베개는 함께 벨 수 있도록 길게 만들어 원앙을 새겨 놓은 것을 원앙침이라 하고 일곱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봉황 한 쌍을 마주보도록 수놓고 둘레에는 십장생과 완자 무늬로 꾸민다. 이것은 구봉침(九鳳枕)이라 하며 자녀를 많이 두라는 뜻이 담겨있다.

원앙금의 본견(이불 위를 감싸는 천)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사용했다. 이 때 푸른색의 천을 이불 위쪽에 짧게 자리잡게 하고 붉은색의 천은 아래쪽에 넓은 범위를 차지한다. 신랑은 상부는, 신부는 하부를 뜻하는 것과 같아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전통적 유교적 부부 관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청·홍’의 비유적인 결합은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여기는 전통적 의례에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신랑이 신부를 맞기 위해 장가가는 날. 말에서 내려 신부집 문을 들어설 때 얼굴의 하반부를 가리는 파란 부채, 신부가 초례청에 나 올 때 수모(手母)가 신부의 얼굴을 가리는 빨간 부채는 신랑 신부가 처녀 총각이라는 동정(童貞)의 상징이다. 또 함에 넣는 청홍실, 채단(綵緞) 등 이 있다.
그리고 원앙을 수놓는 이유는 부부의 금슬을 위한 것이다. 혼례 등 길사(吉事)에만 쓰였던 보자기인 ‘수보’에도 부부의 금슬을 기원하며 원앙을 새겨 놓았다. 원앙은 우리나라 새 중에서 가장 깃털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자연 속에 있어도 눈에 잘 띄는 노랑, 청색, 흰색, 황금색의 현란하고 고운 깃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앙의 수컷들은 낮이나 밤이나 늘 적으로부터 암컷을 지키려고 그 주변에서 떠나는 일이 없다. 원앙은 새색시처럼 아름답고 또 일생 동안 변함없이 암수가 서로 사랑하고 지내기 때문에 혼례 때에는 언제나 원앙처럼 사랑하라고 말한다. 물위를 나란히 떠다니는 원앙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서로 싸운다거나 떨어져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쌍의 원앙 가운데 한 마리가 죽으면 끝내 나머지도 죽음의 길로 갈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혼례를 치를 때 한 쌍의 원앙을 선물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게다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원앙의 고기를 먹으면 애정이 다시 싹튼다는 속설까지 전해 내려온다.
◀다정한 원앙을 수 놓아 부부의 좋은 금슬을 바랐다.

원앙금침은 신부가 결혼 할 때 준비해 와야 하는 예단(禮緞) 중에 하나다. 예단은 예폐(禮幣)의 한 종류로 예폐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보내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그중 예단은 비단을 선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처가는 예단으로 보고, 시댁은 함으로 평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결혼이 개인과 개인의 동거를 넘어서 가문과 가문이 새로운 연을 잇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결혼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신부의 어머니를 보면 그 여자를 알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예단을 준비한 씀씀이가 곧 처가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예단은 선물이기 때문에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예단을 준비할 때는 금전적 가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존중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현대에 와서 결혼의 예를 간소화시키기 위해 함과 예단을 생략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다. 물론 본질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예단으로 허세를 부리는 것도 근절해야 한다.
시댁 어른들은 예단으로 이불이 들어오길 원하면 ‘농 속이 캄캄하다’라는 말로 눈치를 주기도 한다. 보통 예단으로 이불을 할 때는 신랑 신부가 사용할 원앙금침뿐만 아니라 시부모님이 쓰실 이불도 함께 준비한다. 시부모님께 드릴 이불은 신랑 신부가 사용할 화려한 색의 원앙금침과는 다르게 황금색이나 비취색의 옅은 꽃무늬가 새겨진 온화한 본견을 사용한다. 예단으로서의 이불은 깔고 자는 요와 덮는 이불, 짝을 이룬 베개와 방석이 하나의 조를 이루어 두 세 계절의 이불을 준비하는 것이 정석이다.
또 예단으로 이불을 보내는 이유는 ‘이불처럼 포근하게 며느리를 감싸 안아주십시오’라는 친정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다.
◀좋은 이불은 꼼꼼한 바느질이 완성한다.

예단으로서 이불의 중요성을 제외하고도 좌식 주거 형태에 따라 바닥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자는 전통적 침실 문화에서 이불의 가치는 크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반평생을 이불 속에서 보낸다. 신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가 잠이라고 한다. 사람은 잠을 자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내일의 힘을 얻는다. 편안한 잠자리는 육체의 피로를 효과적으로 덜어주며, 반대로 불편한 잠자리는 몸을 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좋은 이불에서 잠을 자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좋은 이불의 요건은 좋은 솜을 넣어야 하는데, 좋은 솜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원료로 만든 목화나 명주, 양모가 좋다. 좋은 솜은 사람과 함께 숨을 쉬어 청결하고 기분 좋은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안 좋은 솜은 습기가 쉽게 차 이불이 금새 무거워 지고 세균이 자라기 쉬운 환경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좋은 이불은 정갈하고 튼튼한 바느질이 완성한다. 원앙금침과 같은 한실이불은 솜에 색이 있는 본견을 위에 씌우고 하얀 천으로 나머지 부분을 감싸 최소한의 바느질로 이불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바느질이 꼼꼼하지 않으면 이불의 모양이 망가져 버린다. 결국 좋은 이불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빚는 정성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결혼한 사이를 ‘한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 원래부터 사람들이 결혼을 해도 잠을 같이 자는 관습이 없었더라면 그 관계는 어떨까. 미혼의 연인이 내내 함께 다니며 사랑을 속삭인다하더라도, 성(性)과 관련한 어떤 행위를 넘어서 일상적으로 함께 잠을 자는 부부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부부와 잠자리의 함수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조들은 원앙금침을 중요한 예단으로 여기며 그 속에 부부의 사랑이 무르익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본견은 청색과 홍색이 화려한 조화를 이룬다.

◀원앙금침은 농 속을 환하게 한다.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