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화·관세화 유예는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아이

쌀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동시에 관세화 유예만이 오직 살길이라고 외치는 농민단체들의 목소리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월 20일 WTO에 협상 개시 의사 통보 이후 오는 11월 중순 대토론회를 통해 대응책을 공개하며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10년 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우리나라는 ‘회원국에 특별대우를 계속 적용할 경우 동 회원국은 추가적이고 수락가능한 양허를 부여한다’는 협정문에 협의해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수입량을 국내 소비량의 4%로 인정하는 특혜를 받았다. 이 유예기간은 올해로 만료되고 2005년부터 관세화를 계속 유예 할 것인지, 그렇게 된다면 어떤 조건이 추가될 것인지 연말까지 협상을 마쳐야 한다. 만약 이 ‘응급 협상’에 실패한다면 우리나라는 자동적으로 관세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추가적이고 상대국이 수락가능한 양보’의 조건이 관세화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관세화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세화 유예에 대응될 조건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에서의 우리의 목적은 ‘개방의 폭’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런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농민 단체들은 관세화 유예 사수만이 오직 농업의 죽어 가는 호흡을 이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화 교육위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앞으로도 관세화를 막아내는 것 하나 뿐이다”라며 “정부는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국민들은 그렇게 되는 날까지 농민들의 편에 서주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관세화 유예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전국농민총연맹은 오는 13일 ‘우리 쌀 지키기 식량주권수호 2004 전국 농민대회’를 열어 관세화 유예를 지키는데 막바지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쌀 협상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시기인 지금까지도 농민단체들이 관세화 유예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농촌의 상황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농가가 총 1백56만호인데 이 중 쌀을 생산하는 농가는 95만호로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만큼 쌀 협상이 농촌에 미칠 영향을 짐작 할 수 있다. 게다가 WTO이후 쌀을 포함해 현재 2백58개의 품목에 달하는 농산품의 수입이 제한되고 있는데 이 또한 자유화의 날이 눈 앞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열악해져가는 농촌 환경을 생각하면 쌀 시장의 개방화와 함께 농촌이 완전히 주저앉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발등에 불이 처마로 옮겨 붙기 전에 농촌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협상은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개방의 폭’을 최소화하기 위한 우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번 협상 진행과정에서 아쉬웠던 것은 대내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민단체의 반발과 국민들의 우려의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내 설득을 먼저 했다면 후속 정책을 펼치는 것이 수월할 것은 당연할 결과일 것이다.
두 번째, 수입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 쌀의 품질은 세계 어느 곳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다. 그 장점을 살려 가능성 없는 지역이나 경쟁력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고급 가정용 쌀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농촌 개발 및 지원을 체계적이며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기계, 농약, 비료 등 농사에 사용하는 용품에 보조를 꾸준히 실시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쌀의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며 그 과정을 줄이는 것도 가격경쟁력을 높힐 수 있다.
쌀 시장 개방이 당장 혹은 10년 후가 된다고 해도 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농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제 정부와 농민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그 변화를 효율적으로 극복하고 주도해 나갈 실천적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 지난 10월 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당수동 논에서 농민들이 ‘쌀에대한 관세화가 되면 한국 농업은 곧 죽음’이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