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만한 세상에 오늘도 지친 몸을 구겨 넣는다
셋방살이에 질린 이들의 평생 소원은 내 집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셋방살이에 한이 맺혀 아들에게
‘네집을 가져라’는 유언을 했고, 아들은 집을 가졌지만…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가 발표되었을 때가 1960년대였다. 작가는 당시 수도서울을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헛소리만 지른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인구 380만의 서울을 보고 만원이라고 비명을 지르기에는 조금은 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즈음인 1944년에는 94만이었던 서울 인구가 1955년에는 1백50만명이 되었고, 1960년대 산업화 정책과 함께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7백50만을 넘어섰다. 이러한 폭발적인 인구집중으로 인하여 서울은 주택, 환경, 교통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중에서 서울시민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단연 주택문제였다. 의식주가 만족스럽다고 해서 사람답게 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당연히 충족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시 서울은 시민들이 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주거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가난한 서민들은 서울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전세, 사글세를 전전해야 했다.
조선작은 셋방살이의 끔찍함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고 있다. “셋방살이 주제에는 아내와 나의 방사도 건숭건숭이게 마련이었다. 혹시 이 깊은 밤중까지도 주인집에서들 잠들지 않고 우리들의 기척을 엿듣는 것이 아닐까 싶어, 괜스리 초조하고 조바심이 나서 영 형편없는 작업이 돼버리기가 십중팔구였는데, 그렇게 서둘러서 대충대충 만든 이남이녀가 별 탈 없이 무병하게, 그리고 활달하게 자라 주는 것만도 여간 신통한 일이 아니었다.”(<고압선>, 1974). 이 텍스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가장 은밀한 부부관계도 편하게 할 수 없는 것이 셋방살이였다. 셋방살이는 세입자들의 체면과 염치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이런 셋방살이라는 가혹한 주거환경이 1970년대 대다수 서울시민들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었다.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自轉)>(1978)은 셋방살이의 애환을 알레고리적으로 그리고 있는 텍스트이다. 주인공 정기호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평범한 서울시민이다. 그는 육개월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새로운 셋방을 찾아다니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복덕방에 들어설 때마다 이골이 나 있는 말투로 “자신은 아이도 없고 단 두 식구뿐이며 아내가 출근을 하거나 바람기가 있어 매일 카바레에 드나들지도 않으므로 안집을 잘 지켜줄 수 있으며 공장을 쉬는 날엔 자신도 집에 남아 두 마리의 세퍼드가 되어 파수를 서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과 그에게 아내가 “아이 낳고 싶어요. 셋방살이 그만두고 아이 낳구 싶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셋방살이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정기호가 수유리에서 새로운 집주인 김씨를 만나면서 텍스트의 서사가 빨라진다. 김씨도 그와 마찬가지로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인물이었다. 셋방살이에 한이 많은 김씨는 무리하게 은행대출을 얻어 수유리에 집 한 채를 사게 되었고, 김씨와 의기투합한 그가 앞 뒤 재지를 않고 그 집에 전세를 들기로 계약을 해버린다. 그런데 이사 당일 김씨가 느닷없이 그의 셋방으로 찾아와 은행대출이 내일이나 나온다는 끔찍한 말을 전한다. 그들은 수유리 집의 주인 강씨에게 찾아가 이사를 하루 연기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강씨는 온 시내가 다 들고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 이사대열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겠냐고 반문을 한다. 그들은 강씨가 이사 갈 갈현동집으로 찾아가 이사채비를 하는 집주인에게 하루를 연기할 것을 청하고, 그 갈현동 집주인이 이사 갈 돈암동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돈암동 집은 경매에 넘어간 집이고 이 집을 인수한 사람은 베일에 싸인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일수놀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여편네라기도 하고 서방이 대단한 자리에 있다기도 하는”소문만 떠돌 뿐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울 시내 어디에 어떤 쓸만한 물건이 나왔다는 건 귀신같이 알고 있어서 제때에 비서라는 새파란 놈을 보내 계약을 딱 맺어 버리는” 무서운 여인이었다.

이제 찾아갈 곳이 없게 된 김씨는 이사행렬을 하루 늦추는 것을 포기하지만 정기호는 지금까지의 행로를 역으로 하여 자신이 살던 셋방으로 이사 올 사람들에게 연기를 부탁하러 흑석동으로 달려간다. 흑석동 집 아주머니는 이사를 하루 연기하는데 동의를 했지만, 흑석동으로 이사 올 상도동 집은 아주 철거가 되어 그 집주인은 이사는 연기할 수 없게 된다. 상도동 집을 헐고 3층 양옥집을 짓는 주인도 돈암동 집을 인수한 전설 같은 여자였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암약하고 있는 복부인의 표상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뛰어다니며 서울의 대이동 막아보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결국 수유리 집으로 이삿짐을 옮기나 집주인 강씨는 집안으로 이삿짐을 들이지 못하게 막는다. 담 밑에 이삿짐을 내려놓고 정기호부부와 김씨부부는 노숙을 하게 된다.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는 셋방살이 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 박필기(차승원 분)네 집안은 삼대째 셋방살이를 하는 집안이다. 얼마나 셋방살이에 한이 맺혔으면 필기의 아버지는 ‘네 집을 가져’라는 유언까지 한다. 필기는 투잡스, 쓰리잡스를 하면서 드디어 박필기라는 이름 석자가 새겨진 문패를 달게 되지만 그 집은 귀신(장서희 분)이 사는 집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귀신이 출몰하는 집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기는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귀신과 좌충우돌 대결을 벌인다, 정기호나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세입자들은 귀신과 사투를 벌이는 필기와는 이심전심이 될 것이다. 1970년대 서울에서 자기집을 가진다는 것은 생명의 값어치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어느새 서울에서 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1960년대 포화 상태에 이른 서울은 셋방이라는 비좁은 둥지에 몸을 부대이고 살았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