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儀禮)가 복잡하구나

요즈음 사람들은 의례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현대는 정보화의 시대요, 세계화의 시대로 이 같은 최첨단 시대에 의례의 중요성을 언급하면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고 행하여야 하는 것이 의례이다. 의례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행하는 예절로써,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활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의례가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옛날에는 그 절차가 복잡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기 때문에 궁중이나 관청, 사대부가(士大夫家) 등을 막론하고 모두 예(禮)를 숭상하였으며 이를 철저히 지켰다. 한마디로 말해 예(禮)를 생활화하였던 것이다. 『예기(禮記)』에 보면, ‘사람이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로우니 그런 까닭으로 예를 배우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는 예를 좋아하고 배워 실천하면 누구든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예의 생활화를 강조한 것이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모든 가치덕목은 예의 실천을 통해서 현실화되고 실제화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교 국가를 지향했던 조선시대에는 더 이상 재론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가 나라를 다스리는 근간이었으며, 예를 게을리 하면 정사를 그르친다’는 인식을 했던 때였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의례도 자연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대간(臺諫)이 어전을 물러나 제자리로 가자 아래서부터 차례로 물러갔다. 매번 출입할 적에는 영사(領事)는 동쪽 협문(夾門)으로 드나들고 다른 신하들은 서쪽 협문으로 드나들며, 책을 그대로 놓아둔 채 땅에 엎드려 나아가고 물러나곤 하였다. 나가서 근정전(勤政殿) 북쪽 계단 아래에 당도하여 차례로 서서 서로 읍(揖)하고, 빈청(賓廳)의 남쪽에 이르러 의막(依幕)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빈청에 이르러 밥을 먹고서 옥당(玉堂)으로 돌아왔다. … 저물 무렵 갑자기 야대(夜對)하라는 명령을 들었기로 물으니 근일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두워진 뒤에 경연청에 나가니 승지(承旨) 허엽(許曄)·주서(注書) 윤탁연(尹卓然)·한림(翰林) 정언신(鄭彦信)·정사위(鄭士偉) 그리고 나, 상하번(上下番) 여섯 사람이 입시했다. 주상께서 비현각(丕顯閣)에 납시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앉으셨으므로 신 등은 방안으로 들어가 북향하고 절한 다음 자리로 나가니, 주상께서 편히 앉으라 명하시고 나서 강의한 글을 한 번 읽으셨다. … 숙배(肅拜: 한양을 떠나 임지로 출발하는 관리가 임금에게 작별을 아뢰는 일)를 드릴 양으로 대궐에 들어가니 첨지(僉知) 일초(一初) 박근원(朴謹元)이 찾아와서 환담하였다. … 삼전(三殿: 임금·왕비·왕대비)께 숙배를 드리고 대궐 밖에 있는 순라군(巡邏軍)이 머물고 있는 임시 막사(軍鋪衣幕)로 들어가니 의정부(議政府)에 행례(行禮) 하라는 전갈을 서리에게 보내왔다. 드디어 의정부로 나아가 정중간으로부터 들어가서 검상출관청(檢詳出官廳)에 당도하여 교의(交椅)에 걸터앉았다. 사록(司錄) 등이 뜰에서 이미 마중을 했는데, 또 들어와 공적인 인사를 하며 두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리고 서리(書吏)·하전(下典)들이 차례로 공적인 인사를 했다. 사록(司錄) 등이 다시 들어와 읍(揖)하니 곧 사직 인사였다. … 교유서(敎諭書)를 받잡고 들어가 대청의 동벽(東壁)에 이르러 군수 정엄(鄭淹) 등의 절을 뜰에서 받고 문상례(問上禮: 윗 사람을 문안하는 예)를 행한 뒤에 직헌방(直軒房)으로 들어갔다. 곧 옷을 고쳐 입고 나와 북벽(北壁)의 의자(椅子)에 걸터앉아 수령(守令)·찰방(察訪)·심약(審藥)·검률(檢律)의 공례(公禮) 재배(再拜)를 받고 나니, 호장(戶長)·기관(記官)·의율생(醫律生)·일수(日守)·서원(書員)이 차례로 행례(行禮)를 하고, 교생(校生)은 계상(階上)에서 행례(行禮)하였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사례(私禮)의 읍(揖)을 행했는데, 나는 호장(戶長) 이하의 행례(行禮)는 제폐(除 )시켰다.”
유희춘이 경연출입(經筵出入)의 예(禮), 숙배(肅拜)의 예(禮), 목민관(牧民官)의 문상례(問上禮) 등에 대하여 기록한 내용이다. 이처럼 군신(君臣)·조신(朝臣) 간의 의례와 그 절차가 복잡하였다. 그래서 유희춘은 21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복관(復官)되어 조정에 돌아와 관직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복잡한 절차 때문에 한두 번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예기』에 ‘예는 절도를 넘치면 안된다’는 구절이 있다. 예라는 것은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된다. ‘과공(過恭)이면 비례(非禮)’라고 했듯이 공경함도 지나치면 예가 아니다. 그러므로 절도에 맞게 예를 행할 필요가 있다.
의례는 생활화와 인간화의 지향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이나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의례를 알아야만 한다. 이 점을 명심하고 의례를 알고 행했으면 한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