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 문화 / 채집의 문화(상) - 심마니

“심마니들은 山을 닮았다
그네들의 마음 속엔 산삼 한뿌리 보다도
평생을 함께 해 갈 ‘山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디 흠양받재 허옵시고 몽을 주시옵소서”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 길을 만들며 소장마니가 앞서면 어인마니가 따른다

예로부터 산삼은 귀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겨 ‘신초’ 또는 ‘명초’라 했다. 산삼이 지닌 감미롭고 황홀한 향기 때문에 ‘방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흔히 전해 오는 옛이야기나 책에 따르면 산삼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몹쓸 병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라며 ‘산삼으로 다스리지 못할 병이 없다’고까지 했다.
이렇듯 뛰어난 약효를 지닌 데다 귀하디귀한 것이 산삼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에 산삼이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그 험난한 과정의 한가운데에는 심마니가 있다.
지난 주말, 오후 1시쯤 북산면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필자는 난생 처음 타보는 완행버스 탓에 약속시간이 서너 시간이나 지나서 도착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강원도 북산면 추곡리에 있는 ‘심마니협회’를 찾았다. 1999년 12월 문을 연 심마니협회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가짜 산삼의 유통을 바로잡고 심마니들의 언어와 산신제를 보존하고자 만든 단체이다.
심마니협회장 박만구(48) 씨는 옛 문헌에 심마니들을 왕실의 특수부대로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왕실의 건강과 임금의 몸보신을 위해 심마니를 ‘비밀특수부대’로 부린 것이죠. 그러면서 이름도 대장을 어인, 부대장을 중어인, 취사원을 정래원, 초년병을 날소대인, 심마니를 채삼꾼이라 불렀어요.”

그는 아마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런 심마니로 구성된 비밀특수부대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마니는 3, 5, 7명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요즘에는 둘씩 짝을 지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산에 오를 때는 가장 젊은 ‘소장마니’가 앞장서고 경험이 많은 ‘어인마니’가 맨 뒤에 선다. 이렇게 두 명이상이 함께 산을 오르는 까닭에 대해서 박 씨는 “본래 산삼은 악산(嶽山)에 많다”며 “심마니들은 나무는 안 보고 땅만 보고 다니기 때문에 혼자 산에 다니면 위험하다”고 덧붙인다.
여러 명이 산삼을 캐러 갈 때면 산에 오르기 전, 산삼의 분배에 대해서도 미리 정하고 들어간다. 산삼을 캔 사람의 몫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두가 나누어 갖거나 반은 본 사람이 나머지 반은 공동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산삼을 캔 사람이 각자 갖는 것을 ‘각메’, 또는 ‘독메’라고 하며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을 ‘원앙메’(또는 ‘동메’)라고 한다. 또 이들에게는 따로 구역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번에 설악산을 가자 하면, 설악산에 오르는 것이고, 오대산에 오르자 하면 오대산 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산에 한 번 들면 한 달씩 머물기도 했으나 요즘은 1∼2주, 짧게는 하루만에 산에 다녀오기도 한다.
심마니에게는 금기와 신앙이 뒤따른다. 부정한 몸으로 산에 오르면 산신의 노여움을 사 산삼을 볼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이 스스로 금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에는 입산일을 택해 산에 올랐다. 대개 홀숫날을 택해 입산일을 잡았는데 일단 택일을 하고 나면 문에는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았으며, 상가에도 가지 않고 부부 사이의 잠자리까지 멀리했다. 또 심마니들은 개고기나 비린생선 등을 먹고 산에 오르면 삼을 캘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이 불길하다고 여기는 까마귀나 뱀을 산에서 만나면 심마니들은 길조라 여기기도 한다.
우선 산에 오르면 산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산신에게 옷을 선물한다는 의미로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 옷을 걸어놓고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를 올릴 때는 보통 북어와 과일, 밥, 돼지머리, 술, 유과 등을 올리며 초와 향을 피우고 창호지와 무명 실 꾸러미를 제당에 건다. 이렇게 모든 산신제 준비가 끝나면 어인마니와 소장마니가 차례로 큰절을 올리고 축문을 왼다.
◀ 산삼을 담는데 사용하는 망태.

축문은 보통 “신령님께 아뢰옵니다. 저희가 오늘 이렇게 입산하여 이 자리에 온 것을 산삼을 받자올까 해서 찾아왔사오니, 부디 재물을 내주시길 바라옵니다. 산신령님 부디 흠양 받재 허옵시고(치성을 받아주시옵고), 오늘밤에라도 그저 몽(꿈)을 주시옵소서”라는 형식으로 외는데 이렇게 하면 모든 산신제가 끝난다.
본래 입산 첫 날은 산신령으로부터 몽을 받기 위해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때로는 산신제를 지낸 뒤 대낮부터 잠을 청하기도 한다. 심마니들에게 심몽(산삼에 관한 꿈)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예전부터 심마니들은 산삼은 인간의 능력으로 캐는 것이 아니라 산신령이 내주어야 받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산삼은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자연이 보답으로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한 번은, 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내 앞으로 상여가 지나가더군요. 나도 모르게 상여를 힐끗 처다 보는데 글쎄, 시체의 상반신은 모두 썩어있고, 하반신은 멀쩡한 거예요. 너무 놀라 잠에서 깨고 다음날 어김없이 산에 올랐죠. 그런데 그 날 거짓말처럼 삼의 줄기부분은 벌레가 파먹었는지 반쯤 썩어있고, 뿌리는 전날 꿈에서 본 시체의 다리처럼 멀쩡한 삼을 발견했어요.”
본래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박만구 씨는 주변 심마니들에게 들은 꿈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남들이 흉몽이라 여기는 꿈이, 심마니들에게는 ‘삼 찾는 꿈’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심마니들은 산신령이 나오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이는 커다란 무를 지게에 지고 오는 꿈을 꾸고 ‘심봤다’를 외치기도 한다.
이런 꿈에 대해 미신이라며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간절히 원하면 그것이 꿈에 나오고 꿈에 나온 장소를 더 유심히 살피다 보면 삼을 볼 확률도 더 높아지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몽을 받아 삼을 캤다는 말은 다분히 의지의 결과일 수도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지려 하면 미심적은 것이 더 많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산신령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보통 심마니는 처서(8월 말)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삼 캐기에 들어가는데 이는 처서 이전에는 산삼의 약효가 잎으로 올라가 있다가 처서를 지나서야 뿌리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물론 처서 이전에도 심마니가 삼을 보러 다니기는 하지만 삼을 발견해도 캐지 않고 숨겨놓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렇게 숨겨놓은 삼을 다른 심마니가 와서 캐 가도 할말이 없다.
심마니의 산행은 일반인들의 등산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등산은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편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라면 이들의 산행은 좌우로 상하로 샅샅이 훑으며 길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일반인이 심마니를 따라다니는 일은 마치 극기 훈련을 받는 것과도 같다.
심마니들은 보통 삼을 캐고 나면 그 주변을 또 한 번 둘러보고는 하는데 주변 어딘가에 또 다른 소생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 산삼 주변에는 작약, 당귀, 천낭성 등의 약초가 많이 자라 함께 캐 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심마니들은 산삼을 본 순간 섬뜩하고 오싹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일거라고 섣불리 예상한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삼이 내뿜는 기(氣) 때문에 순간 ‘오싹’한 기감(氣疳)을 느낀다는 것이다. 풀숲 사이에서 산삼을 발견한 것은 산삼의 기와 사람의 기가 가 순간 통했기 때문이라고…….
◀ 심마니들은 산삼을 산신령이 내주는 것이라 믿고 정성을 다해 산신제를 올린다.

우리의 산삼은 세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약효가 뛰어나다. 전설에나 나올법한 불로장생의 약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삼이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박만구 씨는 후천적으로 나병에 걸린 노인이 산삼을 먹고 말끔히 나아 심마니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만났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산삼의 약효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심마니가 산삼을 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던가? 아무리 많은 삼을 캐더라도 자신이 캔 산삼을 먹지 않는데 이는 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삼만 보는 전업 심마니보다는 약초나 송이, 버섯을 부업으로 하는 심마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삼을 팔아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시집 장가보낸다는 것은 다 옛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산삼가격은 20여 년 전에 비해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수입 산삼이 싼 가격으로 대량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죠. 간혹 외국산 산삼이 우리나라 산삼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일도 벌어지고 요즘엔 일반인들까지 삼을 캔다고 나서고 있어 갈수록 심마니들의 영역은 좁아지고 있어요.”
얼마 전 때 아니게 불어 닥친 산삼열풍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은 삼을 캐러 와서 정작 삼은 구하지 못하고 산만 훼손하고 간다.
예부터 심마니들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고 재물에 보답하기 위해 산을 지키고 돌보는 역할 했다. 자연과 더불어 일생을 사는 심마니들에게는 산은 생명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산을 사랑하고 자연이 주는 기쁨을 아는 그들은 산(山)을 닮아 있었다.
◀ 산삼의 효능은 인삼과 비슷하나 약효과는 월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