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진화(進化)를 위하여

조 훈 현 / 프로기사

바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이미 수천 년 전 중국의 요순시대에 바둑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니 실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동양인들의 문화유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손에서 손을 통해 이어 내려온 바둑은 예도(藝道)와 놀이의 복합적인 기능을 갖추며 동양의 대표적인 정신문화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최근 바둑 붐이 일어나면서 전 세계의 바둑 인구도 부쩍 늘어났으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동아시아의 한, 중, 일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선두를 다투고 있다. 중국은 바둑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고, 일본은 중흥국이며, 한국은 국제대회 23연승의 신화를 세운 최강국으로써 팽팽하게 삼국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상이다.
경제개발과 함께 막강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인해전술을 펴고 있는 중국은 바둑에서도 프로 리그를 도입하는 등, 발 빠르게 현대적 진화에 적응하고 있고, 일본은 수백 년 전통과 짜임새 있는 바둑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은 한류 특유의 승부 근성으로 중, 일 강대국들 틈에서 짓눌리지 않고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현대바둑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점은 1937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선진바둑이 보급되고 당시 순장바둑을 두던 조선 땅의 국수(國手)들이 그 해에 뜻을 모아 현대바둑 룰에 따른 대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지금의 바둑이 두어지기 시작한 기간은 겨우 70년에 불과한 데, 지금 우리는 바둑에 관한 한 챔피언 국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러기까지는 조남철 국수와 김인 국수를 비롯한 원로 바둑인들과 나. 서봉수, 이창호, 유창혁,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등으로 이어지는 프로기사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 절대적인 성원과 지지를 보내준 국민들의 바둑사랑이 원동력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어쨌거나 1988년 시작된 잉창치 배 우승을 신호탄으로 후지쯔 배, 동양증권 배, 농심 배 국가대항전, 춘란 배, 삼성화재 배, 엘지 배 등등 수많은 국제 바둑대회에서 우리의 바둑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조국의 명예를 지켜왔다.
중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한국 바둑은 엘리트 교육 방식으로 소수정예의 승부사들을 연속적으로 배출해왔다.
그러나 그 기적적인 세계제패의 신화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는 정보 전달이 개방되고 확장되어 소수정예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다분히 실전적인 전투바둑으로 기세 상의 우위를 점해왔던 한국 형 바둑은 이미 상대국 기사들에 의해 연구 분석이 끝난 상태고, 인터넷 바둑을 통해 공간과 시간이 장애가 극복되면서 바둑은 점점 평준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바둑행정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해 시스템 자체가 불안한 것도 우리 바둑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바둑 팬들의 뜨거운 열정과 바둑 인들의 노력이 그런 불안요소들을 그때그때 극복하고 있는 셈인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바둑을 냉정한 시각으로 한 번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정부는 바둑을 두뇌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하고 대한체육회에 가입시켰다.
바둑계도 그런 추세에 쌍수를 들어 환영을 표했다. 바둑이 문화인가, 게임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스포츠인가 구분하기 참으로 힘들지만 미래바둑의 틀은 스포츠로 규정되리라고 확신한다. 고도의 판단력과, 추리력, 공간지각력, 수리력, 상상력을 동원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인텔리전트 스포츠. 나는 그런 의미에서 바둑을 정중동의 스포츠라 확신한다.
바둑은 날마다 허물을 벗으며 진화한다.
마주 앉아야 둘 수 있던 바둑이 이제는 컴퓨터를 통해 불특정다수와 언제든지 둘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바둑이 진정한 동양정신의 문화이자 세계인의 두뇌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지금 단추 구멍을 잘 꿰어야 한다.
대중의 흥미를 유인하면서도 품격 있는 승부를 연출할 수 있는 바둑.
여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 바둑은 시대의 조류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건강한 바둑의 진화를 위해서 나를 비롯한 바둑기사들은 끊임없이 머리를 모으고 있다.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한국바둑이 영원히 세계바둑의 대명사로 불렸으면 좋겠다.
조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