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이 성장할 수록 노동자들은 병들어 갔다
노동자 중 신체 어느 한 부분도 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는 기계의 톱니바퀴일 뿐이다.
그는 ‘잘 살아보세’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평화시장의 불꽃이 된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경 서울 청계천의 평화시장 골목, 온 몸에 불을 붙인 채 한 청년이 고통에 일그러진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주위의 동료들이 잠바를 벗어 불길을 껐지만, 그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절규하듯 외쳤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잊혀지지 않은 이름, 22세의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이 땅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을 위하여 불꽃처럼 산화했다.
해방 이후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그의 분신은 이전의 노동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적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게 한 그의 분신은 고속 성장의 이면을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1960~70년대 의류 제조와 유통의 중심지인 서울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일하고 있던 그는 평화시장에서 한국의 왜곡된 노동구조와 비인간적인 처우를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생전의 전태일의 조사에 의하면 평화시장의 노동구조는 재단사, 미싱사, 미싱보조, 재단보조, 시다 등으로 이뤄져 있다(제품을 마무리하는 ‘미도메’와 다리미질만을 담당하는 ‘시아게’ 등이 있는 곳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한 작업장에 1명의 재단사와 재단 보조, 10명 정도의 미싱사(미싱 보조 포함)와 시다 등의 비율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다(보조 인력)로 뛰어 들은 아이들은 업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닌 미싱사나 재단사로부터 급여를 받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12~15살 소녀들이 주를 이루는 시다들은 정식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 공장에서의 노동 이외에도 업주의 사적인 노동 또한 강요받는 등의 힘겨운 노동을 해야만 했다. 1년 반에서 2년 정도를 일하면 시다에서 보조공으로 승격이 이뤄지며 월급도 시다보다 많이 받게 되고, 미싱 보조에서 3~4년 정도 지나면 업주로부터 할당받는 작업량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오야’ 미싱사가 된다.
따라서 오야 미싱사까지 되기 위해서는 6~8년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나마 평화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높이 1.5미터도 되지 않는 8평 정도의 다락방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인간적인 수모를 견딜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재단사나 미싱사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이직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평화시장의 직급 중에서도 최하위의 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시다는 다른 직공들보다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고, 재단사나 미싱사의 일감에 따라 자신의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늘 안정된 생활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직한 자리에는 또 다른 시다들이 유입되면서 평화시장의 노동력은 늘 새로운 인력으로 충원될 수 있었다.

전태일의 경우처럼 시다들은 노동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떠난 시다들이 많은 만큼 쉽게 채용될 수 있었다. 이들에게 학력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얼마나 건강하게 2~3층의 공장과 가게를 빨리 오갈 수 있느냐가 취업의 관건일 뿐이었다.
한편 미군의 원조물자가 중단되고 국내에서 나일론 생산이 이뤄지는 1960년대에 평화시장은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한국의 섬유산업이 수출에 주력하고 있을 때, 국내 내수 시장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던 평화시장은 70년대에는 하루에도 2백~3백명이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을 정도로 성왕을 이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중저가 의류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의류도매의 70% 이상이 이곳을 통하여 이뤄질 정도였다. 이런 호황은 평화시장을 1950년대 미군 구호품 등을 팔던 무허가 시장에서 30년 만에 의류 도매의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성장과 노동자들의 지위는 상반된 것이었다. 평화시장에서 동화시장, 통일 상가, 신평화 시장 등으로 평화시장의 외형은 확장된 만큼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유입되고 있었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급여로는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가기에도 벅찼다. 게다가 환기가 되지 않는 좁은 작업장은 재단사와 미싱사의 90% 이상이 만성 신경통, 폐병에 걸릴 정도이고, 이곳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노동자 중 신체의 어느 한 부분도 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우리는 1960~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이 자아를 잃어버린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현재의 실재(實在)인지를 분간 못하면서, 그 속에서 나도 부지런히 그들과 같이 해나갔다”(「1967년 3월 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 전태일 평전-』, 돌베개, 1983)라는 토로처럼 ‘나’는 기계의 톱니바퀴일 뿐이다. 참다운 존재를 갈구했던 그는 ‘잘 살아보세’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평화시장의 불꽃이 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부품으로 전락한 모든 이들에게 참된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전태일의 분신은 인간적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장면 중에서.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