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게 죽을 권리’인가 ‘신의 권리에 대한 도전’인가

15년째 침대위에 누워있는 그녀, 테리 시아보. 배꼽 위에 꽂힌 튜브로 투입되는 비타민 복합물이 유일한 생명줄이며, 이따금 미소 짓기도 하지만 ‘원초적 작용’에 불과하다. 그녀는 스물 여섯의 나이에 심장발작으로 뇌를 다치고 식물인간이 됐다. 그녀의 남편 마이클은 ‘깨끗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15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아내에게 급식 튜브를 제거해달라는 청원을 냈고, 7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플로리다 주 법원은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테리의 부모가 ‘죽을권리’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번복하며 눈물로 호소했고, 이는 미국 상·하원의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지난 18일 급식 튜브는 제거됐고, 그녀는 지난 4월 1일 치열한 안락사 논쟁을 뒤로한 채 숨을 거뒀다.
이로써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안락사 문제는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고, ‘품위있게 죽을 권리’ 와 ‘신의 권리에 대한 도전’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 안겼다.
어원적으로 안락사는 수월한 죽음을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치유될 수 없는 병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료적 행위를 뜻한다. 안락사는 크게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불치의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생명을 단절시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지하거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에 한림대 이인영 교수가 전국 16개 시·도 지역에서 전체 인구 비율에 따라 추출한 조사대상자에게 ‘고통이 극심한 불치병 환자가 죽을 권리를 요구할 때 의료진은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가’를 물은 결과, 국민 71%가 소극적 안락사를, 56%가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했다. 이 결과는 그 동안 유교적 관습속에서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의 사고가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를 ‘존엄사’라고 말한다. 즉 안락사는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하나의 권리라는 것이다. 살 가망성이 없는 환자가 끔찍한 고통 속에 지속적으로 죽음을 요청한다면, 편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가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 고통을 참지 못한 환자가 자살을 택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환자의 고통 그 자체로의 결정보다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인간이 인간의 죽을 권리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환자가 끊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사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닐 때 그에게 죽음은 하나의 ‘휴식’이 될 수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안락사의 부작용은 정착된 법 적용과 인식 전환으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대법원은 1984년 이후, 죽어 가는 환자가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죽음을 요청할 때에는, 의사들은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사하여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용인하고 있다. 이에 의학 협회에서는 1986년에 안락사를 수행할 수 있는 방향 설정을 해 놓았다.
첫째는 안락사를 요청하는 환자가 자발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둘째는 신중하게 숙고하여 요청해야 하며, 셋째는 지속적인 죽음의 요청(A Durable Death Wish)이 있어야 하고, 넷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섯째는 동료들과 충분한 상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명확한 법 아래, 환자와 가족의 충분한 논의를 도와줄 수 있는 호스피스 등의 역할이 강조된다면 안락사의 부작용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많은 의사들은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고 성스러운 선서를 한다. 과연 어떤 것이 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15년간 식물인간 상태인 테리 시아보가 살던 플로리다주 우드사이드 호스피스 앞의 파인라스 공원에서 그녀의 안락사를 반대하는 미국 시민들.
<허유나 기자>  yunari86@dankook.ac.kr